4세기 고구려의 樂浪ㆍ帶方地域 경영
- 최초 등록일
- 2007.01.1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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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4세기 고구려의 낙랑, 대방 경영에 관하여 안악3호분과 동수묘를 통해 살펴본 레포트이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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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구려사 전개에 있어 4세기 이래 한반도 서북부 진출과 남진, 평양천도는 단순한 영역확대가 아닌 고구려의 전반적 국가성격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한 점에서 고구려가 낙랑・대방 지역을 지배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는 4,5세기 고구려史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전제가 된다.
고구려가 낙랑군ㆍ대방군을 축출한 이후 이 지역을 어떻게 지배 경영하였는지 확실히 검토된 바는 없으나 현재까지는 대체로 낙랑ㆍ대방지역의 토착세력이 상당기간 힘을 행사했기에 고구려의 진출이 용이하지 않았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東川王 이후 고구려의 진출노력을 생각하면 어렵게 차지한 이 지역의 경영에 소홀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에 문헌사료의 부족으로 4세기 낙랑ㆍ대방 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경영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安岳3號墳의 墨書銘과 德興里古墳의 묵서명으로 문헌사료의 부족함을 채워 고구려의 낙랑ㆍ대방지역 경영방식을 살펴보겠다.
안악3호분의 묵서명에 따르면 冬壽의 관직은 都督號+將軍號+太守(刺史)號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는 동시대 東晋에서 도독에게 부여한 칭호의 일반적 관례에서 벗어지나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동수의 관직에는 동진의 경우와는 달리 관할지가 빠져있어 동수의 관직을 허구적 성격의 자칭관직으로 보아왔었다. 그러나 동수가 허구의 관직을 자칭했다면 관할지 역시 허구로 설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동수의 관직의 수여주체가 누구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동수의 행적으로 보아 동수가 관직을 획득한 시기를 前燕에 있을 때와 고구려로 망명한 이후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전연에서의 획득 가능성을 검토해 보면, 현 사료 상 동수가 고구려에 망명하기 전 역임한 관직으로 司馬가 확인되기에 위 묵서명의 관직이 동수가 전연에 있을 때 역임한 것은 아니라 보인다. 그러나 <<資治通鑑>> 券9 晉紀17 咸和 8年條와 咸康 2년 正月條에 따르면 동수가 東夷校尉나 태수급 이상의 고위관직을 역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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