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 및 내의견]실학적 경세치용학의 대두 / 기호남인학파
- 최초 등록일
- 2006.12.17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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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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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춘추정신과 예학
1. 춘추정신과 화이관
2. 왕권 강화와 명분 질서
실학적 경세관
철학적 입장의 특성
1. 이황 성리학의 계승과 발전
2. 본원 유학 지향성
맺음말
본문내용
들어가는 말
기호 남인 학파라는 명칭은 학파의 분류 방식에서 지역색과 당색을 결합한 용어이다. 서울․경기 지방 및 이 지방과 하나의 학문 권역을 형성하고 있던 강원(영동) 지방을 지역적 연고로 하며, 당색으로는 남인의 유파에 속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이렇게 부른다. 그런데 17~18세기의 기호 남인들은 학파로 불릴 만큼 일정한 학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기호 남인들의 배타적 학통이 정립된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영․정조대 이후이다. 체제공에 의하여 가능성이 타진되기 시작한 도통은 황덕길에 가서 이황 학통으로 공표되고, 이어 허훈에 가서 체계적인 도통관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수많은 남인 학자들의 사상을 대변할 수 있는가 하는 대표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학문은 경세치용학 또는 중농주의적 실학으로 규정될 수 있을 만큼 당시의 일반적인 성리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는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또한 허목과 이익이 퇴계학의 발전에 어떠한 공헌을 하였으며, 이것이 그들의 경세치용학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춘추정신, 경세관, 철학관을 차례대로 고찰하고자 의도한다.
춘추정신과 예학
1. 춘추정신과 화이관
춘추정신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국제 정세와 시국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사고의 기본틀로서, 명청 교체라는 국제 질서의 변동과,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하여 통치 질서가 해체되어 가던 상황을 춘추대의에 의거하여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허목은 중국을 존엄시하고 이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존명배청의 정신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유형원은 더욱 강렬한 중화주의자였는데, 명 멸망 후 난파해 온 유민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명조의 비운을 슬퍼할 정도로 강한 존명배청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 적극적인 춘추절의의 표현 방식이었던 북벌론에 대해서는 반대하거나 거론하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허목은 ‘존중화 양이적’의 이념을 버리지 않지만, 명의 멸망을 기정 사실화하고 북벌이라는 무력 충돌보다는 내치를 지향하는 내수론자의 입장에 서 있었으며, 유형원도 마찬가지로 방어적 자강주의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