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전통 주택의 공간 배치
- 최초 등록일
- 2006.12.10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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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거학 수업 들을 때 제출했던 레포트 입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서 직접 사진을 찍고 첨부하였습니다.
알기 쉽게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목차
해풍 부원군 윤택영 재실
전통 주택의 공간 배치
사랑채와 안채
사당과 별당
용어 설명
본문내용
해풍 부원군 윤택영의 재실은 제기동 정규엽의 가옥(옛 이름)이다. 이 가옥은 보통의 살림집이 아니고 임금이 제사를 지내러 올 때 불편함을 덜기 위해 만든 재실이었다. 이 건물이 있었던 곳의 지역 이름이 제기동이라 붙여진 이유는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가옥은 순종의 장인인 윤덕영이 지은 것이라 하는데 19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현재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전통한옥 중에서 가장 독특한 ‘元’자형 구성을 보이고 있다. 구조는 부엌, 안방, 대청, 사랑방, 누마루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純宗)의 장인(丈人)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東宮)의 계비(繼妃)로 책봉(冊封)(1906)되어 창덕궁(昌德宮)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한다.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및 복원하였다.
사당은 4.19때 화재로 소실되어 초석만 남은 것을 남산으로 이전할 때에 함께 복원했다. 이 사당은 ‘一’자형으로 ‘元’자의 북측 머리에 둠으로써 이 집의 제일 안쪽 높은 터에 자리 잡았고, 그 앞 남쪽 한 단 낮은 터에 ‘元’자의 ‘ㅠ’형 몸채를 두어 결국 안채와 사랑채가 연속되어 ‘一’자형으로 ‘ㅠ’의 ‘一’자를 이루고, 그 앞 동서 행랑채가 ┛┗형태를 이루며 연속되어 길상문자형(吉祥文字形)을 이룬 것으로서 현존하는 주택으로는 유일한 평면형으로 알려져 있다. 몸채는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이고 앞채는 삼량가(三樑架)이다.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과 방형초석(方形礎石), 그리고 일부에는 굴도리를 사용하여 집의 격식(格式)을 높였다.
사랑채와 안채
가부장권의 상징은 사랑(舍廊)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은 조선 전반기만 해도 사랑(斜廊)이라고 불렀으며 집 곁에 지은 작은 문간방으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반기에 이르러 가부장권의 강화와 내외사상의 영향으로 사랑채가 별개의 채로서 위용을 갖추면서 한자 표기도 달라지게 되었다. 사랑은 가문계승의 직접 참여자인 가부장과 장자를 위한 생활공간이면서 가문의 권위를 상징하며 가계계승을 위한 수련장이었다. 사랑채 기단의 높이는 사회적 계급에 따라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당과 별당
윤택영 가옥에는 ‘一’자형 위로 사당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당은 대체로 안태의 안대청 뒤쪽이나 사랑채의 뒤쪽 제일 높은 곳에 마련된다. 가묘법에 따라서 중상류 주택에서는 대개 사당이 건축되었는데 세 칸 정도의 사당채와 마당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별당은 시집가지 않을 딸을 위해 두었던 공간으로 윤택영 가옥에는 별당이 없었다. 아래 사진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찍은 것으로 사랑채나 안채의 경우 기단이 두 단인 것에 비해 사당의 기단은 그보다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얼마만큼 사당을 중요시 여겼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 자료
안팎에서 본 주거문화
우리 옛 집 이야기
우리나라 문화재
참고 사이트
남산골 한옥 마을 http://www.hanokmaeu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