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침탈의 수단 독립협회
- 최초 등록일
- 2006.11.27
- 최종 저작일
- 2006.01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독립협회 비판 글
목차
없음
본문내용
독립협회의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사람은 이완용, 안경수, 서재필(그러나 그는 귀국 후 단 한번도 자신을 이 이름으로 부른적이 없었고 필립 제이슨 또는 피제손으로 표기하였다.)등이었다. 이들은 소위 개화파에 속하는 인물들로서 특히 미국이나 러시아와 가까운 입장이어서 정동파 또는 외국인파(이것은 같은 동양계인 청.일을 제외한 개념)라고 불리었다.이들은 청국이 종주권을 주장하던 시기에 반청적인 입장에 서 있었으며, 따라서 갑오정권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외세가 조선 내에서 세력균형을 이룸으로써 국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이들은 갑오정권이 추진했던 신문간행 계획을 유치하여 서재필로 하여금 ‘독립신문’을 발간하게 하였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의 예산으로 충당되었다. 그러나 서재필은 이것을 자신의 개인소유로 만들었으며 나중에 이를 넘길 때 돈을 받고 팔았다. 서재필은 조선 정부로 추방을 당하면서 정부로부터 2만8천8백원을 받아갔다. 자신은 10년 계약으로 조선정부의 고문으로 왔는데 아직 7년10개월이 남았으니 그에 해당하는 월급과 여비까지 달라고 한 것이다. 독립신문의 판권은 하나의 이권침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재필은 친미파로서 너무나 지나쳤다. 이름을 바꾸고 미국 시민권을 얻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완전히 미국인 행세를 하였던 것이 문제이다. 그는 미국에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갖는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주장했고, 3.1운동 직후 한인연합대회를 가질 때 애국가가 아닌 미국 국가를 부르게 하였었다.
일본에게 속아 난 독립협회
문제는 독립협회가 ‘조선의 독립을 기념할 근거’를 청일 전쟁에서 패한 뒤 일본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둔 점이다. 청이 청일전쟁에서 진 뒤, 일본의 강요로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약문에서 ‘조선에 대한 종주권 포기’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