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와 키치
- 최초 등록일
- 2006.11.16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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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아방가르드와 키치와 관한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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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과정을 모방하나 키치는 예술의 결과를 모방한다. 아방가르드와 키치의 간격은 커서 이어질 수 없다. 교양있는 소수와 가난하고 무식한 다수의 간격이 있다. 그래서 공식문화는 소수에 속하고, 다수는 민속문화나 키치에 만족한다. 대중은 소수가 믿는 진지함을 미신적으로 믿는다.
중세에는 예술의 주제가 의뢰인에 의해 결정되었다. 예술자는 매체에 집중하는 제작자였다. 그 때는 형식적인 문제에 정력을 바쳤다. 중세의 예술가는 자신을 억눌러야 했고 종속시켜야만 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개인적인 해석이 인정받았다.
서구예술은 모방의 승리이며 기준이 없다. 대중은 대가의 예술에서 감탄과 경이의 대상을 찾는다.
예술이 일치하지 않으면 일반인에게 사치품이다. 그 불쾌감도 경외감으로 침묵한다. 문화의 불쾌감은 사회의 불만이고, 청교도주의적이나 파시즘에서도 나타난다. 예술은 신앙심이나 혈기나 미덕으로 파괴된다.
러시아 정부는 농부는 레핀보다 피카소를 선택해야 한다고 할 수 있으나, 농부는 그런 여력이 없다. 탁월한 문화는 가장 인위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정부는 예술 선택의 문제에 무기력하다.
정치권력이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이유는 선동을 위해서다. 키치는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에서의 문화의 경향이다. 키치의 장려는 전체주의 정권이 대중에게 비위를 맞추려는 방법이다. 이런 정권은 대중의 수준으로 문화를 내림으로 대중에게 영합함이다. 아방가르드는 이래서 금지되며 탁월한 문화가 내재적으로 더 비판적인 문화이기 때문은 아니다.
파시스트와 스탈린 주의자의 관점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이 비판적이여서가 아니라 너무나 순진하기 때문이다. 키치는 영혼을 독재자에 근접시키며 효과적인 선전을 주입하기에 적절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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