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에 대한 개관과 브라질의 역사, 경제
- 최초 등록일
- 2006.11.15
- 최종 저작일
- 2006.0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소개글
1)어린 시절의 룰라.
1945년 10월 27일 페르남부쿠의 한 빈민촌. 극심한 가뭄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가리늉스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상봉은 고정적인 직업과 생계를 위해 그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상파울루로 상경한 아버지로 인해서 5살 때 이루어졌다. 일곱 살짜리 룰라는 산투스 거리에서 땅콩, 오렌지, 타피오카 등을 파는 장사꾼일을 하면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상봉 이후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로 인해서 상파울루로 건너간다. 이후 룰라는 세탁소 점원 구두닦이, 전화교환원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목차
Ⅰ.룰라의 생애에 관한 분석.
1. 정치 입문전의 룰라
1)어린 시절의 룰라.
2)청년기의 룰라.
2. 대선 실패- 1989․1993․1997년 대선에서 실패.
3. 1기 룰라 정부의 탄생. -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좌파 정권 탄생.
1)지지기반- CUT와 FS 등을 포함한 6개의 노동조합.
2)경제정책 -빛과 그림자.
3)사회정책
4)부정부패 스캔들
4. 2기 룰라 정부의 탄생. -카르도주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재선에 성공.
1)재선 성공요인
2)2기 룰라 정부의 과제
3)BRIC
Ⅱ브라질의 문화.
1. 총체적인 개괄
본문내용
룰라는 29년만에 재기된 대통령직선제 선거에서(1989년) 1600만 표를 얻으면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450만표의 차이로 패하고 만다. 이후 93년과 97년의 대선에서 역사상 브라질의 가장 뛰어난 석학이며, 헤알플랜(Real plan)이라는 인플레이션 억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전직 재무장관 출신의 진보주의 성향의 사회학자인 카르도주에게 두 번 모두 패하게 된다. 하지만 룰라는 세 번의 대선에서 유망한 대통령 후보에서 선거 막바지에 가서 지지율을 잃어 낙선했다. 이는 그가 아직까지 브라질 노동자의 희망으로서 빛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세 번에 걸친 대선의 실패 요인을 2002년 대선 성공 이후와 비교해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첫 째는 정치계의 새로운 바람이지만 급진적인 노동운동가의 이미지로 인해서 보수 기득권층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다. 이는 카르도주가 국가의 가장 보수적인 정당들과 연합정당을 구성한 것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강경한 노동자라는 이미지이다. 세 번째는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노동당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그는 세 번의 대선에서 실패하지만 2002년의 대선에서는 IMF의 권고안을 수용하는 온건한 이미지와 노동당 강령을 사회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여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노동당의 역할을 인식시키는 등의 모습으로 그는 마침내 4전 5기의 성공을 이루어 냈다.
참고 자료
「한국경제의 새로운 미래 BRICs」-현대경제연구원
「콜롬버스에서 룰라까지」-송기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룰라 자서전」-데니지 파라나
「브라질-글로벌 컬쳐 가이드」-폴커 펠츨
「브라질의 선택 룰라」-브리 뚜 알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