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우리나라 하도(河道)의 변화 사례
- 최초 등록일
- 2006.05.25
- 최종 저작일
- 2006.03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우리나라 하도(河道)의 변화 사례를 중심으로 쓴 레포트입니다.
목차
1.청주시 무심천
2.강원도 홍천강
3.계절에 따른 하천의 하도 변화
본문내용
1.청주시 무심천
무심천의 물길은 홍수 등에 따라 자주 바뀌었다. 물길의 바뀜은 무심천뿐만 아니라 황하, 양자강, 미시시피강이 그렇고 한강, 금강, 낙동강 등도 예외는 아니다. 잦은 홍수로 인한 하천의 범람은 자연히 물길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은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초기, 그리고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면 무심천의 물길과 제방의 위치가 각기 다르다.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청주읍성도를 보면 원마루에서 합쳐진 냇물이 석교동으로 곡류하다 땅속에 묻혀있는 남석교 아래를 지나 고개를 틀어 읍성 서문 밖으로 북류하여 까치내로 흘러 들었다. 무심천은 청주 읍성의 청남문(남문)과 청추문(서문)을 감돌아 가며 읍성의 자연적 해자(垓字) 역할을 했다. 현재의 물길과 비교하면 훨씬 도시 안쪽으로 물이 흘렀다. 하천의 잦은 범람으로 자연제방은 점점 유실되고 따라서 물길도 조금씩 방향을 바꾸었다. 국유 하천인 무심천이 이같이 물길을 자꾸 바꾸자 당국에서는 환지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오래 전, 청주시 당국에서 무심천 일대를 측량 조사한 결과 엉뚱하게도 국유지의 한 가운데로 무심천이 흐르니 냇물에게 토지세를 물릴 수도 없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제방을 제대로 쌓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었으니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의 방향이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 현재의 서문시장과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구한말까지 인공제방은 은행로 자리의 석교제방과 모충동 입구까지 직선제방이 있었을 뿐 서문교 북쪽은 자연제방이었다. 서문교 북쪽 제방은 1921년에 개축하였으나 그 규모가 작고 단단하지 못해 홍수 때마다 범람하였다. 오오꾸마 쇼지가 언급했듯 무심천은 툭하면 전답을 휩쓸어 주위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부교외(南部郊外)로부터 일직선으로 흘러와서 제방의 동쪽 근방에 부딪치며 왼쪽으로 머리를 틀다 남석교 밑을 고요히 흘러 서쪽산 기슭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 사창리 기슭을 씻기고 잡아 틀어 북쪽으로 흘렀다" <오오꾸마 쇼지, 청주연혁지>
일제 때 청주의 근대사 기록 중 상당부분을 일인이 저술한 책에 의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1918년 대홍수로 남쪽 전답사이에 하나의 지류가 형성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