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신문읽기의 혁명-손석춘
- 최초 등록일
- 2006.04.19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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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손석춘의 <신문읽기의 혁명>에 관한 서평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의 신문 읽는 습관을 보면, 굉장히 소극적이고 편향되어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집에서 뉴스도 보고 별다른 신문 읽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타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주말이 아니면 TV를 볼 기회가 없었기에 신문 읽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기숙사로 신문 구독을 신청하고 아침 점호가 끝나면 신문을 들고 올라가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혹은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신문을 읽곤 했다. 또한 대학교 올라와서는 경제학개론 시간에 경제 기사를 스크랩하기 위해 신문을 구독했고 학기가 끝나고는 구독을 정지시켰다. 이렇듯 내게 신문이란 그저 TV의 대용에 불과했고, 신문을 읽어도 1면에 나온 커다란 표제만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을 뿐이요, 스포츠, 연예 면 등 내가 관심이 가는 분야만을 읽고는 치워버리기 일쑤였다. 거기다가 사설 부분은 어떠한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논술과 면접 대비로 신문의 사설만을 골라 읽고는 시사점에 대해 내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은 채 신문사의, 혹은 신문기자의 의견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뿐이었다. 이렇듯, 나는 그저 습관적으로 신문을 읽고만 있지, 신문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편집부 일을 해본 적이 있다. 그 때의 내가 한 일이란, 교지나 소책자 등의 편집이었고, 그저 원고를 청탁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고, 그리고 교정하는 작업들이 다였다. 나는 ‘편집’이라고 해야 내가 해온 그런 것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너무도 판이하다. 하나의 사실을 앞에 두고서도 편집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너무도 달라지는 신문 편집의 현실 속에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생각하면, 과장하여 말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신문을 수용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을 상대로 나쁜 의도를 가진 신문 편집자들이 신문을 만들어낸다면, 예전의 히틀러와 같은 세뇌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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