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이론]희곡 정착을 위한 진통
- 최초 등록일
- 2006.03.29
- 최종 저작일
-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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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곡의 다양한 장르를 소개한다..
또한 이를 통해 발표할 수 있는 자료이다,
목차
10.5. 희곡 정착을 위한 진통
10.13. 근대 문학의 주변영역
본문내용
10.5.1. 민속극 창극 신파극의 위치
탈춤, 꼭두각시놀음 등의 민속극은 일제의 탄압을 받고, 새로운 구경거리에 관중을 빼앗기고 하는 시련을 겪으면서, 1930년대까지 공연이 지속되었으나 연극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민속극이 상층 지식인의 관여 없이 오로지 민중문화로만 자라난 탓에 연극으로 공인되지 못하고 있는데, 일본을 통해 전래된 서양식 연극을 연극의 유일한 형태라고 믿어 그대로 이식하려 했으므로 전통이 단절되었다.
전통의 단절이 희곡에서는, 이면으로 보거나 표면으로 보거나 의심할 나위없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민속극은 기록 이전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민요와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민요는 근대시가 잃어버린 고향이라고 평가되었지만 민속극은 그렇게 인식되지 않은 채 버림받았다.
민요와 민속극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오랜 유대가 있다. 농민생활과 직결된 민요는 농본(農本)사회의 애민(愛民)사상에 의한 평가를 줄곧 받아왔는데, 민속극은 순응이 아닌 반항의 산물이라 지배층 또는 식자층이 외면했던 전례가 후대까지 이어졌다. 3․1운동 이후의 시민이 민중문화의 저력을 폭넓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대부 문화가 전통의 전영역에 해당한다고 오해하면서 그래서 생기는 공허함을 일본을 통해 서양문화를 수입해 메우려 했던 사실이 민속극과 근대극의 관계 단절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민요와 함께 민속극도 조사하고 연구하자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민속에 대한 애착 때문에 이런 작업을 했으며, 민속극이 연극으로서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다.
김재철은 연극학도로서 민속극을 연구해 1933년에 <조선연극사>(朝鮮演劇史)를 냈다. 그러나 그는 연극사에 대한 이해를 그르치는 구실을 했다. 연극의 유래를 살핀다면서 연극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자료를 어수선하게 들먹여 혼란을 일으키고, 중국 사신에게 보인 산대희(山臺戱)가 바로 탈춤이었다고 하는 근거 없는 판단을 했다. 탈춤과 꼭두각시놀음은 연출 시간이 지루하고, 극장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결함이 있다고 해서 민속극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구주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자 민족은 새 것을 요구”해 신극이 형성되고, “케케묵은 탈바가지를 쓰고 혹은 끄나풀을 잡아당기는 연극은 자연도태가 되는 것을 면치 못할 운명이다”고 했다. 모처럼 연극사를 써서 서양연극 이식을 합리화하고 전통극의 계승을 저해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