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에 대한 재평가
- 최초 등록일
- 2006.01.03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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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무운동과 변볍자강운동에대한 재해석을 정리
목차
1. 서론-역사해석의 변동
2. 뒤집힌 양무운동의 성격 평가
3. 양무기업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던가
4. 무술변법운동의 성격 평가
5.결론-무술변법파와 양무운동의 새로운 관련
본문내용
1. 서론-역사해석의 변동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양무(洋務)운동과 변법(變法)운동은 19세기 후반 청왕조의 대표적인 개혁운동으로서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가 전국적 규모에 걸쳐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로 규정되어 있다.양무운동과 변법운동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모택동시대의 반제 반봉건 사관에 서는 한 19세기의 혁명적 운동은 태평천국이나 의화단 운동 같은 농민 중심의 하층민 운동만이 역사의 강력한 추동력으로 찬미될 수 밖에 없고, 20세기 초의 신해혁명에 와서야 비로소 미숙하지만 정치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민족자본계급 중심의 초기 브르주아 민주혁명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1860년대에 시작된 양무운동은 바로 “봉건지주 , 관료” 계급이 태평천국 농민 서구 제국주의에 굴복, 지원을 받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므로 바로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의 주된 협력자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술(戊戌)변법운동은 연약한 자산계급 개혁운동으로서 청일 전쟁 패배에 따른 망국위지에 대응한 애국적 민주적 성격을 인정 받기는 해도 강대한 제국주의 봉건세력 앞에 너무나 무력하게 압살당하고 말았던 일막의 비극으로 규정되었을 뿐이었다.이와 같은 해석에 대응하는 두 갈래의 대립세력이 나타는데 하나는 대내적으로 민중을 진압하고 대외적으로 제국주의에 투항하는 반동적, 매국적 노선이며, 또 하나는 대내외적으로 반제 반봉건 투쟁을 벌이는 혁명적 애국적 노선으로 규정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