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영화 이퀼리브리움
- 최초 등록일
- 2005.12.14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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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이퀼리브리움`을 보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해 봤습니다. 기독교가 가진 돌`아온 탕아`의 가르침에 너무도 위배되는 기독교의 폐쇄성이 이 영화에는 잘나타나고 있습니다. 영화의 기독교적 코드에 맞춰서, 특히 `돌아온 탕아`의 가르침과 연결지어서 기독교 폐쇄성 문제에 코드를 맞춰서 감상문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영화를 예전에 봤었다. 하지만 그때는 워낙 이소룡, 이연걸, 토니쟈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단순히 주인공의 멋진 액션에 중점을 두고 봤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보면서 저번에 봤을 때랑은 느끼는 것도 달랐고 드는 생각도 많이 달랐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저번에 봤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의미들이 영화속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영화를 보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이렇다. 3차 대전 이후의 21세기 초 지구. 3차 대전 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사랑, 증오, 분노, 질투, 시기 등의 감정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인류는 인간의 감정을 철저하게 말살 한다. `리브리아`라는 새로운 세계는 `총사령관`이라 불리 우는 신부의 대리인의 통치하에, 전 국민들이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에 의해 통제되고, 이 약물을 정기적으로 투약함으로서 온 국민들은 사랑, 증오, 분노, 질투, 시기 등의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여기서 주인공은 성직자로 나오고 도시의 최고 권력자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부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성직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성직자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주인공은 `리브리아`에서 철저히 전사로 양성된 특수요원이다. 그는 `프로지움`의 투약을 거부하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는 반역자들을 제거하며, 책, 예술, 음악 등에 관련된 모든 금지자료들을 색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성직자라는 사람이 아무 죄의식 없이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로 죽여 버린다. 그들을 쏴 죽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이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직자라기보다는 심판자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리는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은 어디를 찾아봐도 볼 수 없다. 그들을 찾아서 죽이기에 바쁘다. 완전히 씨를 말려 버리려 한다. 이것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말하는 기독교의 교훈에 완전하게 위배되는 상황이다.
참고 자료
이퀼리브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