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당송변혁기
- 최초 등록일
- 2005.12.09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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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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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당나라의 쇠퇴 원인
(1)현 종
(2)양귀비
2) 안녹산의 난 5대10국
(1)안녹산의 난
(2)5대 10국
3) 송의 건국
(1)송의 건국
본문내용
[안녹산 난의 원인 및 배경] 당왕조(618∼907)는 현종(玄宗:재위 712~756) 때 국력이 절정에 달하였고 전통문화도 집대성되어 외형적으로는 화려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초기의 지배체제를 지탱해온 율령제(律令制)의 변질, 균전제(均田制) 및 조용조(租庸調) 세제의 이완(弛緩), 부병제(府兵制)의 붕괴 등으로 왕조의 기반이었던 자립 소농민층이 와해되기 시작하여, 이들은 토지를 상실하고 유민화하였다. 당왕조는 토지와 유리된 도호(逃戶)를 조사하고, 전지(田地)와 재산에 대한 과세(課稅), 모병(募兵)의 조직화 등을 통하여 지배체제의 존속을 꾀하려 하였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억압되었던 귀족들이 현종대에 들어와 세력을 잡았고, 관료층 중에서도 구래(舊來)의 문벌귀족들은 농업생산력의 발전, 대토지 소유제의 전개, 상업자본의 이용 등으로 새로 진출한 교양인이나 지주 ·상인층 출신의 능리(能吏)와 대결하여 정치는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세력을 잡은 문벌 ·귀족 출신의 재상 이임보(李林甫) 등은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여념이 없었고, 세력 유지를 위해 변방 절도사로 이민족이나 평민 등도 등용시켰다. 특히 징병제가 파탄된 후, 절도사들은 대량의 용병을 지휘하는 강력한 존재로 부상하였는데, 안녹산은 이러한 배경하에서 현종 ·이임보 ·양귀비 등에게 신임을 받아 유주(幽州) ·평로(平盧) ·하동(河東)의 절도사를 겸임할 정도로 세력이 막강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을 때, 이임보가 사망하자 중년을 넘기면서 정무(政務)에 지쳐 양귀비(楊貴妃)와의 애욕생활로 나날을 보내던 현종 밑에서 재정을 장악한 양귀비의 일족인 재상 양국충(楊國忠)은 동북 국경 방비를 맡아 대병을 장악한 번장(蕃將) 안녹산과 대결하는 실력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