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연관성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9.21
- 최종 저작일
- 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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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미전쟁과 백년전쟁에 대하여 한 것이라서 이들에 대해서 어느정도 잘 알수 있으리라 봅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역사적 개념 이해
(1) 백년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
(2) 장미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
2. 백년 전쟁과 장미전쟁의 연관성 고찰
(1) 백년 전쟁 후 프랑스와 비교지어 본 영국의 상황
(2) 장미전쟁은 영국의 특수한 상황인가?
아니면 백년전쟁의 여파인가?
3. 장미전쟁과 영국 근대화에 대한 이해
맺은 말
* 참고 문헌
본문내용
들어가는 말
기나긴 중세의 시대는 이제 마지막 단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정체는 멈춤이 아니라 연속되는 흐름을 위한 축척이라는 말과 같이 중세는 그 간의 역량의 가능성의 축척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가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역사 과정은 그리 순탄한지 못해서 대개 충돌 및 급진적인 표출이 그 전환점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세말기에 이르러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백년전쟁(1337~1453)이라 할 수 있겠다.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대규모 전쟁으로 비단 두 국가만의 전쟁이라 치부할 수도 있으나 당시 유럽의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의 대결이며 그 뒤에 발생되는 상황이 그 간의 중세에서 이루어진 전쟁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기에 중세에서 근대로의 과도기로써 이해 할 수 있다. 이에 일반적으로 우리는 백년 전쟁 이후에 나타나는 체제를 절대왕정기라 부르며 중세의 장원을 위주로 한 봉건제의 종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백년전쟁이후 영국에서 발생된 장미전쟁을 귀 뒤 영국에서도 보여지는 강력한 왕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백년전쟁의 연장선에서 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는 비단 시간적 연대기 관념이나, 전쟁의 당사자 입장에서 이어지는 상황들에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뒤의 상황이 두 국가간 유사하기에 인식되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에 혹자들은 영국이 대륙의 대표적인 국가 격인 프랑스와의 지리적 정치 상황적 이해가 다르기에 이를 동일선상에서의 이해보다는 영국만의 자생적이며 필연적인 상황 및 결과로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반된 이해는 분명 근대를 통해 보여지는 영국의 대륙 여타의 국가들과는 개별 되어지는 선진적, 독창적, 고립적인 사회, 정치, 산업 체계가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란 특히 이와 같이 같은 문화권의 울타리에 위치한 국가 및 집단 등에 있어서 단절적인 관념은 있을 수 없다. 시간이 그러하듯이 연속성에 우리 인간의 본성이 있고 교류 및 교집합적 연관성에 인류의 변화과정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편협한 시간은 좋은 것이 아니다. 시대구분 및 분류에는 보편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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