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키에르케고르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06.09
- 최종 저작일
- 2005.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1.서론
2.본론
1)키에르케고르(Søren. A. Kierkegaard:1813∼1855)의 생애
2)덴마크 국교회를 위시한 사회상
3)키에르케고르의 대응과 사상
3.결론
본문내용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 정부가 파산하던 해에 부유한 가정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아래서 종교적인 죄의식과 끔찍한 우울과 불안을 배경으로 자랐다. 1838년 아버지가 죽자 키에르케고르는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고, 그 덕분에 금전문제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저술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키에르케고르가 한 사람의 인간이자 작가로서 성장한 데는 재정적 유산보다는 심리적 유산이 훨씬 더 크게 작용했다. 그의 아버지는 정통 루터교를 엄격히 고수했고 형식논증의 논리를 좋아했지만, 아들 중에서 가장 총명한 키에르케고르에게 시킨 엄격한 종교적·지적 훈련은 상상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강한 성격과 경건한 모습 이면에 불안하게 놓여 있는 억눌린 우수의 영향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죄의식을 알게 되었으며, 뒷날 그 이유가 아버지가 어릴 적에 신에게 퍼부었던 저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죄를 알고 충격을 받은 그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고 어머니의 죽음과 6명의 형제, 자매 중 5명의 죽음이 신의 저주를 증거한다는 확신이 늘 그를 괴롭혔다.그는 신학을 공부하러 코펜하겐대학교에 갔으나 오히려 철학 쪽에 관심을 가졌다. 1838년 아버지가 죽자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바램을 이루고자 그는 신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2년 뒤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목표를 바꾼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레기네 올센이라는 어린 소녀와 사랑에 빠져 약혼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곧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 어린 소녀와 설명할 수 없는 죄의식과 복잡한 인간정신에 대한 유별난 의식에 짓눌리고 있는 자신 사이에 커다란 틈이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파혼했고 베를린으로 가서 6개월을 살았다. 이 사소한 연애사건은 통속소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그의 몇몇 저작에서 반성과 해설의 자료가 되었다.
참고 자료
표재명. 키에르케고어의 단독자 개념. 서울 : 서광사 1992
P.가디너. 키에르케고르. 서울 : 시공사, 2001.
후스토 L.곤잘레스. 이형기, 차종순 공역. 기독교사상사(Ⅲ).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O.F.볼노우. 최동희 역. 실존철학입문. 서울 : 이성과 현실,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