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 송미령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6.0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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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미령 일대기에 관한 글입니다..송미령에 관한 자료가 많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필요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유년시절과 장개석과의 결혼
2) 송미령의 정치활동
3) 송미령의 여성운동과 사회활동
4) 대만으로의 이주와 고독한 만년
본문내용
1928년 10월 10일 무창봉기를 경축하는 “쌍십절”에 장개석의 남경정부는 전국 통일의 국민정부가 되었으며 송미령도 First Lady가 되었다. 송미령은 ‘제2차 북벌’을 거행한 장개석을 따라 남경에서 외교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장개석을 결함을 잘 보좌하여 상당한 정치적 작용을 하였다. 결혼 후 그녀는 국민당을 이끌고 공산당과 일제 침략에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장개석을 10년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그의 개인비서, 통역관 겸 외교고문으로 발군의 재능을 발휘했다.1936년 12월 장개석이 일치항일을 주장하는 장학량․양호성의 군대에 의해 서안에서 납치 구금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송미령은 장학량에게 납치 감금된 장개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서안으로 달려가 담판하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담력과 외교력을 과시했다.
이후 항일통일 전선의 성립은 이 서안사건을 계기로 크게 진전되었으며, 또한 세 자매를 제휴하게 해 주었다. 송미령은 열성적이고 재치있고 생기발랄한 매너와 말솜씨를 가졌는데, 그녀의 언변술은 아버지 송가수를 그대로 닮은 타고난 재능이었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성실하였고, 날카로우면서도 재미있는 내조주의적인 모습과 순수한 열망을 보이면서 성숙된 배우나 교사 그리고 정치가적 행동양식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또한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당돌하고 매사에 철저하여 대단히 강한 면을 띠었다. 송경령이 손문의 아내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비서이자 동지로서 최초의 First Lady였으며 손문 사후 그의 신3민주의와 3대정책 수호를 위해 진력한데 비해 송미령 또한 장개석의 비서․통역관․외교관 역할을 하면서 그를 따라 북벌과 항일전을 함께 수행하며 이념적으로도 장개석의 정책을 따른 중국의 두 번째 First Lady였다. 하지만 송경령과 송미령은 매우 다른 정치노선을 추구했는데 송경령이 좌파였던데 비해 송미령은 극우적 정치노선을 추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