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도자기와 다구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5.06.01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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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의 도자기와 그에 관련한 다구에 대해 조사한 것입니다. 사진이 같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1.우리나라 도자기의 전개
2.신라의 다구
3.고려의 도자기와 다구
4.조선의 도자기와 다구
5.현대의 다구
본문내용
2. 신라시대의 다구 - 구(甌)
신라의 찻잔으로 문헌에 남아지는 것으로써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구도 고급차를 담는 찻잔이었던 것 같다. 제사용은 굽이나 받침이 있는 잔을 썼을 것이며 왕이나 귀족이 사용하는 고급다구도 역시 따로 있었을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거친차를 약이나 탕으로 끓여서 뜨겁게 마실 때 쓰던 토기 찻잔도 흔히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또한 물을 마시는 원시적인 그릇으로는 흔히 바가지인데 나무로 된 것을 흔히 사용했을 것이다.
*사진 있음*
674년에 만들어진 경주 안압지에서 회색토기 차 사발(왼쪽사진)이 출토되었는데 그릇의 바깥에는 묵으로 그린 풀꽃과 구름이 있으며 작은 글씨로 ‘茶’가 씌여 있다. 이에 차를 이 토기로 차를 마셨 음을 알 수 있다. 종교 행사를 위한 다구는 굽이 있는데 안압지에서 역시 나온 ‘토기 용왕’이라는 토기에는 “용왕께 정성스레 바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고려의 다구
고려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도자기가 발달하여 이에 따라 다구도 많았다. 먼저 고려시대의 전체적인 도자기의 발전에 대해 알아보겠다.
⑴ 고려청자
청자는 2세기경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옥이 군자를 상징하기도 하며 부귀와 죽음 뒤의 내세를 보장해 준다고 하여 옥을 매우 진귀하게 여긴 중국인들은 옥을 가지고 싶어 했지만 그러기에 옥은 생산량이 한정되어있어 가격이 매우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치 중세 유럽에서 연금술사들이 납으로 금을 만들고자 했던 것처럼 중국인들은 옥을 만들어 내기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실험을 하던 중 흙을 구우면 푸른색의 옷이 입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치 옥같은 푸른색을 띄게 되자 중국인들은 청자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청자가 우리나라에는 9세기에 들어오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전제왕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선종이 유입되고 지방에 새로운 호족이 등장하게 된다. 선종이 널리 퍼져가면서 지방의 호족들은 선종의 가르침에 따라 차를 마시게 되었고 이에 중국의 찻잔이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