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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차문화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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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17.11.20
최종 저작일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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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제시대의 차의 유통은 일본인이 장악하였다. 일본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인해 우리의 차문화는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해방이 되자 서구의 문명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커피. 홍차 등의 서양의 차가 들어와 빠른 속도로 기호음료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점 우리 차와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사찰이나 소치. 미산. 의제와 같은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해 차문화는 면면히 유지되었다. 이렇듯 140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 차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의식다례가 발달되었다. 예로부터 제사와 누에신 등 차를 끓여 올리는 헌공다례와 살아있는 사람에게 격식을 갖춘 행사로써 차를 드리는 진다의례를 행하였다. 둘째, 유가적 수신. 수양의 다도가 발달되었다. 정성스러운 한잔의 차는 학문하면서 깊은 사고를 해야 하는 유학자들에게 잡념을 없애주고, 도를 터득하고자 하는 마음과 정신을 갖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유가, 불가, 도가, 민간사상에서도 골고루 갖추어져서 한국 차문화의 정신적 축이 되었으며, 생활문화의 철학적 기반이기도 하다. 셋째, 음다풍속의 주도적 역할을 한 계층은 문사들이었다. 승려나 궁중에서도 차를 많이 썼으나 12세기 초(고려 중엽)부터 15세기(조선초)까지와 조선 말엽인 18.9세기에 한국의 차문화는 문인다도의 전성기 즉 한국 차문화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성리학자 다인이 주축이 되었고, 조선 말엽에는 실학자 다인이 주축이 된 문인다도는 문장가보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넷째, 관리들에게 다례제도가 있었다. 공무를 집행하는 관리들이 하루에 한 번씩 차를 마시는 시간인 '다시'를 행하였고, 고려와 조선조에서는 중형을 내릴 때 관여하는 관리들이 모여 앉아 차를 먼저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를 원만히 행하기 위해 '다방'이란 정부기관이 있었는데 다방에는 군사(다방군사)가 소속되어 있어 조정이나 왕실의 의식다례를 행할 때 다구와 차짐을 운반하였고 다사를 했으며 다방에서 하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한국의 다도정신은 신라 원효대사의 화정정신(和靜精神), 고려 서산대사의 청허(淸虛)의 차정신, 조선조 초의선사의 사무사(思無邪)의 다도정신을 요약하여 화정, 청허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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