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세사 (고려)] 고려중기 도교의 성행과 그 성격
- 최초 등록일
- 2005.02.22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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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중기 도교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머리말
2.사상계의 동향과 도교
3.도교의 성행과 그 변화
1)도교신
2)도관
3)제,초와 청사
4.고려중기 도교의 성격
5.맺음말
본문내용
1.머리말
원래 도교는 '성인의 도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유,불의 가르침까지 포함한 의미였다. 5세기에 이르러서야 도가만을 도교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 도교와 도가는 혼용되기도 하였다. 도교는 노자의 철학사상에 신선도와 음양, 제가의 각종 요소가 혼합된 것이었고, 이에 참위사상이 첨가되면서 복합성을 띄고 있다. 이런 도교는 복합문화라는 것으로 이에 대한 이해에 따라 도교에 대한 평가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도교 연구가 미비했고, 주로 국문학계나 철학계에 치중되어있어 역사학계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
도교가 처음 고구려말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주목받고 도교 행사가 빈번히 거행되었던 시기는 고려시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예종에서 의종에 이르는 1105년에서 1170년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도교가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고려중기의 연구는 숙종에서 의종 연간의 개혁과 정치세력의 성격에 대해서, 사상면에서는 유학과 불교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주목하였고 고려시대의 도교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비해 경전이나 도교서가 성립되지 못했던 고려시대의 연구를 위해서는 도교의례인 초에 사용하였던 청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청사 자체에 대해서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역사 자료의 검토도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글에서의 연구 방향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고려중기 제사상의 동향을 통해 고려 숙종대에 들어서 도교가 주목받기 시작하였음을 밝히고, 3장에서는 도교신과 도관에 나타난 도교의 성행과 변화를 살펴보고, 도교의 신앙사례인 제,초를 통해 그 실행목적과 신앙대상, 그리고 그 정치적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4장에서는 고려중기에 성행한 도교가 정치,사회적인 변화와 관련하여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