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 최초 등록일
- 2004.12.14
- 최종 저작일
- 2004.12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그것'은 두 번째 시집 이후 김언희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지시어이다. 그것은 더 이상 '인칭'을 부여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고 사물화된 인격을 가리킨다. '그것'은 망상증 환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주체의 개념을 상실한 자는 자기를 사물 속에 놓여있는 또 하나의 사물로 보고 '그것'이라 명한다. 위의 시는 자아 정체감을 상실한 파탄난 인격의 폭력적인 구조를 그리고 있다. 왜곡된 인격의 극한까지 따라가는 김언희의 집요한 시선은 우리 시사 초유의 '잔혹시'를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시는 자유롭고 충만한 여성의 언어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자신이 비판해 마지 않는 지배질서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담론의 구조를 닮아 있다. 남성 중심의 지배질서에 의해 희생된 여성의 존재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언어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그녀의 시는 충분히 의미 있는 부정의 형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생산적인 대안을 준비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자해적이고 위악적인 시쓰기가 오히려 부정의 대상인 남성 중심의 언어를 강화하고 고착시켜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시쓰기가 부정을 위한 부정에 그치지 않도록 창조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활짝 열어젖힌 금기의 언어들과 성적인 상상력이 건강하고 행복한 에로티시즘이나 풍요롭고 생산적인 생태학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언제나 이행 중'인 그녀의 시가 부정의 방향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힘을 새로운 담론의 창조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