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 잊혀진 신전 크로소스
- 최초 등록일
- 2004.05.16
- 최종 저작일
- 2004.05
- 1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크노소스 문명과 함께 사진을 올린자료 입니다
목차
♧ 하인리히 슐리만과 아서 에번스경
♧ 완전히 다른 문명 (미케네보다 앞선 문명)
♧ 아서 에번스 이후의 발굴
♧ 오늘날의 탐사
♧ 크레타섬의 번영과 멸망
♧ 크노소스 궁전(KNOSSOS) :
♧ 크노소스 궁전의 발견된 유적
♧ 크노소스 궁전의 신화
♧ 크레타 섬의 연표
본문내용
♧ 하인리히 슐리만과 아서 에번스경
살로몽 레나크 “에번스의 발굴은 고고학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의 발굴 덕분에 우리는 슐리만의 발굴을 통해 알게 된 문명보다 훨씬 더 앞서고 더 찬란한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에번스의 발굴은 에게해의 고대 문명에서 페니키아인이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 모든 학설을 뒤엎어버렸다.”
트로이․미케네․티린스를 발굴해 전설을 역사로 바꾼 하인리히 슐리만은 그의 꿈을 이룰 네 번째 무대로 미궁과 미노타우로스 전설의 고향인 크레타를 점찍었다. 미노스왕의 궁전은 크레타섬 크노소스의 산기슭에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은 도기 파편이 널려 있고,올리브 나무들로 뒤덮인 자갈밭이었다.
발굴 허가는 쉽게 얻었지만 땅주인들이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값을 터무니없이 높여 부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슐리만과 다른 땅주인 사이에 끼어들어 사기 치려는 사람도 있었다. 슐리만은 화가 나서 아테네로 돌아갔다. 그는 미노스 왕궁이 크노소스에 있다고 확신하고 다시 가려고 했지만 1890년 나폴리의 한 광장을 지나다가 쓰러져 뜻을 이루지 못했다(그는 백만장자였지만 옷차림이 아주 초라해 사람들이 그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아 죽었다).
크노소스를 발굴하는 행운은 아서 에번스에게 돌아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