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문_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당의 입장에서 본 신라의 통일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23.03.02
- 최종 저작일
-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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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 머리말
Ⅰ. 당 전기 세력 확장의 관념적 토대
Ⅱ. 태종의 고구려 공격 실패와 신라와의 연합
Ⅲ. 고종의 백제, 고구려 공격 목적과 당의 철군 배경
Ⅳ. 맺음말
본문내용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악화하였다. 고구려가 중국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백제는 신라를 자주 공격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탈취하였고,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당항성을 공격하여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교통로를 끊으려 하였다. 이에 어려움을 맞게 된 신라는 당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진덕 여왕은 김춘추를 당에 보내어 친당 정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무렵 의자왕은 성충, 흥수와 같은 충신을 멀리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이에 민심은 멀어져 갔고, 나라의 살림은 기울기 시작하였다. 이 기회를 틈타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이 당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백제를 공격하였다. 신라군은 계백의 결사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당군과 함께 사비성을 함락시켰다. 당은 사비성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백제의 옛 땅에 웅진 도독부 등 5도독부를 두어 이 지역을 그들의 지배하에 넣으려고 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백제인들은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은 주류성에서, 흑치상지는 임존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여기에 200여 성이 호응하여 그 기세가 드높았다. 그러나 백제의 부흥 운동은 지도층의 분열로 인하여 실패하였고, 이를 도우려던 일본 세력도 백강에서 격퇴되었다.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와 당은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서둘렀다. 당군은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는 이를 잘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수ㆍ당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의 소모가 컸으며, 연개소문의 독재와 지도층의 내분으로 어려움이 겹쳤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 나ㆍ당 연합군은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당은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두어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려 하였다. 이에 고구려의 유민들은 곳곳에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검모잠은 왕족 안승을 왕으로 받들고 고구려를 부흥시키려 하였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대동강 이남의 지역을 신라에 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의 부흥군을 지원하면서 당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