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의 부족국가
- 최초 등록일
- 2023.02.25
- 최종 저작일
-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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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낙동강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발달 했던 가야
2. 옥저의 사회 모습
3. 옥저의 정치와 경제
4. 옥저의 풍속
5.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 건국된 동예
6. 동예의 풍속
본문내용
김해지역에서 발달하던 금관가야에 대한 내용은 일연이 지은 역사서인 삼국유사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일연이 지은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는 가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가락기(駕洛記)』의 찬(贊)을 살펴보면, ‘자줏빛 끈 하나가 내려와 둥근 알 여섯 개를 내려주었는데, 이 중 다섯 개는 각 읍에 보냈고 한 개는 이 성에 있었다.
그래서 하나는 수로왕(首露王)이 되었고 나머지 다섯 개는 각각 다섯 가야의 군주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금관(金官)을 다섯의 숫자에 넣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고려의 『사략(史略)』에는 금관을 그 수에 넣고 창녕(昌寧)까지 더 기록했으니 잘못된 것이다.]
아라가야(阿羅伽耶)[라(羅)는 야(耶)라고도 한다. 지금의 함안(咸安)이다.]고령가야(古寧伽耶)[지금의 함녕(咸寧)이다.]
대가야(大伽耶)[지금의 고령(高靈)이다.]
성산가야(星山伽耶)[지금의 경산(京山)인데 벽진(碧珍)이라고도 한다.]
소가야(小伽耶)[지금의 고성(固城)이다.]
우리 고려의 『사략』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태조 천복(天福) 5년 경자(서기 940)에 다섯 가야의 이름을 고쳤다. 첫째는 금관[김해부(金海府)가 되었다.], 둘째는 고령[가리현(加利縣)이 되었다.], 셋째는 비화(非火)[지금의 창녕인데 아마도 고령(高靈)의 잘못인 듯 싶다.], 나머지 둘은 아라와 성산이다.[앞의 주와 같다. 성산은 혹 벽진가야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금관가야를 제외한 5개의 가야로 아라가야와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옥저의 사회 모습
함경도 함흥 평야의 동해안에 건국되었습니다. 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한 옥저는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수산업을 주축으로 하여 발달을 하던 옥저는 고구려 압력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고요 이후 고구려에 복속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