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죽음론 고찰 -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과 '마음'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22.05.17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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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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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2.1. 소세키의 순사 인식
2.2. 오가이의 순사 인식
Ⅲ.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나쓰메 소세키는 도쿄 제국 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문부성 국비 유학생으로 런던까지 다녀온 근대 일본 지식인의 필두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기 한 해 전에 태어나 메이지 유신이 끝날 때 즈음 까지 살았던 인물로, 메이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온 몸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인 그야말로 ‘메이지 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890년 도쿄 제국 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하여 졸업 후 1895년 29세 때 마쓰야마 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듬해 구마모토로 적을 옮겨 34세 때 까지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1900년 10월 소세키는 문부성에 의해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귀국 이후 소세키는 『호토토기스』에 연재한 처녀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으며 『도련님』, 『산시로』, 『마음』 등의 걸출한 작품들을 남긴다. 소세키는 당대 일본 최고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메이지 시대의 엘리트 지식인이다. 그가 쌓아올린 문학적 성취와 사상, 윤리관은 많은 일본인에게 귀감이 되었고, 현대에 들어와서 ’대문호‘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한편 모리 오가이(森鷗外) 는 1862년 시네마 현 쓰와노 번(津和野藩)의 다이묘의 시의(侍醫)인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19세가 되던 해에 도쿄 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대학 졸업 후 육군 군의에 임관하였으며, 독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1884년 오가이는 육군성 파견 유학생으로 독일 베를린으로 가서 수학한다. 1888년 귀국한 오가이는 외국 문학 번역을 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처녀작인 『무희』로 이름을 알린 그는 『마리 이야기』, 『기러기』, 『아베 일족』 등의 문학작품을 남긴다. 모리 오가이는 소세키와 더불어 ’대문호‘로 불리우는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참고 자료
모리 오가이, 『아베 일족』, 북스토리, 노재명 옮김, 2006
장영철(2005), 나쓰메 소세키와 모리 오가이의 문학적 경계, 일본어문학, 24호, pp 335-360
나쓰메 소세키, 『마음』, 문예출판사, 오유리 옮김
나쓰메 소세키, 『문명론』, 소명출판사, 황지현 옮김, 2004
손화영.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연구 – K와 「선생」의 죽음을 중심으로 -”.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구현숙(2013), 일본 명치시대 유학자와 일본 문예사조 –모리 오가이와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문명연지, 14권 1호, pp.123-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