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의 배경 및 과정, 척화파와 주화파
- 최초 등록일
- 2021.09.17
- 최종 저작일
-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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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627년, 후금은 조선에 침입하여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이 때 조선은 후금에 당하고,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후 후금은 조선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며 온갖 압박을 가하고, 민가에 침입해 약탈을 자행하기도 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후금은 더 나아가 사신을 보내 형제 관계가 아닌, 군신 관계를 맺으려 했고, 조선의 분노는 폭발하여 거절하고 사신을 감시하였다. 사신은 이후 도주하였고, 도주하는 와중에 인조의 선전교서를 손에 넣게 되어, 본의 아니게 전쟁의지를 드러내게 된다. 이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고치고, 조선이 왕자를 보내 청에 사죄하지 않으면 대군을 일으켜 공격하겠다고 하였으나 이 시기 조선은 척화의지가 고조되어 청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참고 자료
나무위키 : 병자호란
https://namu.wiki/w/%EB%B3%91%EC%9E%90%ED%98%B8%EB%9E%80#s-4
한국문화민족대백과사전 : 병자호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3151
경향신문 : [한국사 바로보기](31) 척화파와 주화파의 갈등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41222172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