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재 박규수의 생애와 개화사상의 논의
- 최초 등록일
- 2021.05.22
- 최종 저작일
-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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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환재 박규수의 생애와 개화사상의 논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박규수 선생의 생애
1. 유소시기
2. 제2기
3. 제 3기
4. 제 4기
Ⅲ. 사상적 접근과 이해
Ⅳ. 개화사상
Ⅴ.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는 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손자이자 초기 개화파 인사로, 오경석吳慶錫, 유홍기劉鴻基와 함께 초기 개화사상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초기 개화파 인사들이 모여 개화사상에 대해 배웠고, 많은 개화파 인사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 그의 제자들은 개화사상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박규수는 실학과 개화사상을 잇는 중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 개화사상과 실학 사이에는 사상적 연결과 인맥이 존재하는데 두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인물이 바로 박규수이다. 개화사상은 이후 한말 국권회복운동 노선의 하나인 계몽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계몽운동은 한말 독립전쟁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개화사상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대표적 인물인 박규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살펴보고, 개화사상과 실학의 계승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한국 근대사상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한말 계몽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박규수의 생애와 사상, 개화사상을 중점으로 다루고자 한다.
Ⅱ. 박규수 선생의 생애
1807년 10월 7일, 박규수는 서울 북부 가회방嘉會坊 재동齋洞에서 박종채朴宗采와 전주 유씨 사이에서 3남 중 장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아명은 규학珪鶴, 자는 환경瓛卿이고 호는 환재이다. 박규수가 태어난 가회방 재동 일대는 흔히 ‘북촌’北村이라 하여 조선시대 세도양반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박규수가 생장한 시기는 조선 양반지배체제의 모순이 극도로 심화되었던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1800년 정조正祖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정국이 급변하였고, 이듬해 신유사옥辛酉邪獄 이후 천주교에 대한 금압은 더욱더 철저해졌으며, 세도정치하에서 정치 기강은 더욱 문란해지자 민심 또한 위정자로부터 이반 되어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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