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문학사] 김남천의 생애와 시기별 문학 성향
- 최초 등록일
- 2021.05.12
- 최종 저작일
- 2020.0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학부는 4.4의 성적을 유지하며 조기 졸업하였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석사 학위 수료 때까지
4.3 이상의 성적을 유지할 만큼,
대학/대학원 생활 중 어느 것 하나 대충하거나 허투루 한 적 없습니다.
그만큼 자료의 퀄리티도 허투루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작성하거나 만든 자료만 업로드합니다!!
목차
1. 김남천의 생애
2. 김남천의 문학 성향
2.1. 카프 - 정치 우위론적 소설
2.2. 비판적 리얼리즘
2.2.1. 모럴론
2.2.2. 고발문학론
2.2.3. 풍속론과 로만개조론
2.2.4. 관찰문학론
2.2.5. 전향소설
3. 임화와 김남천
3.1. 물논쟁
4. 마치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김남천의 생애
1911년 3월 16일 평안남도 성천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효식(孝植)이다. 192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동경의 호세이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1926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 시 잡지『월역(月域)』의 발간에 참여하였고, 1929년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동경지회에 가입하였다. 이윽고 1931년 10월 카프 제1차 검거 때 카프 맹원 중 유일하게 기소되어 2년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1935년 임화·김기진과 협의하여 카프가 경기도 경찰국에 해산계를 낼 때까지 조직에 충실하면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
1945년 임화와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설립한 후, 1946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발전적으로 통합된 ‘조선문학가동맹’이 결성되자 이 단체의 중앙집행위원회 서기국 서기장이 되고, 8월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월북하여 1948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49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그 후 문화전선사 책임자,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나 1953년 휴전 직후 남로당계 박헌영 세력을 제거하는 사건과 관련, ‘종파 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되었다.
2. 김남천의 문학 성향
2.1. 카프 - 정치 우위론적 소설
1929년 호세이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열혈 청년 김남천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즉 카프 동경지부에 가입한다. 또한 카프 동경지부가 발행한 동인지 『무산자』에 임화, 안막 등과 함께 동인으로 가담하였다.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29년 김기진이 프로문학의 대중화론을 주창하며 나서자 이에 대하여 개량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극좌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31년에 전개된 ‘예술운동의 볼셰비키화’, 카프에 있어서 2차 방향 전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김재남, 『김남천-민족문학을 위한 삶과 작품』, 건국대학교출판부, 1994.
곽승미, 『1930년대 후반 한국 문학과 근대성-김남천의 경우』, 푸른사상, 2003.
민연옥, 「김남천 소설연구」, 경상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박은영, 「김남천 전향소설 연구」, 단국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유 설, 「김남천의 창작방법론 연구」, 경기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