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민족주체역사관을 정립한 대종교 지도자 - 김교헌의 민족주의 역사서술에 관한 논고를 중심으로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김교헌의 생애와 활동
1) 김교헌의 생애
2) 교단조직과 포교활동
3) 민족교육과 항일독립운동
3. 김교헌의 역사인식
1) 신단실기『神檀實記』
2) 신단민사 『神檀民史』
4. 맺음말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909년에 서울에서 나철․오기호 등이 중심이 되어 창설된 대종교는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목표로 세워진 종교단체이다. 대종교는 나철이 동지 수십명과 함께 서울 북부 齊洞에서 檀君神位를 모시고 제천의 大禮를 행함과 동시에 ‘檀君敎佈明書’를 공포하여 민족종교로서의 단군교(후에 대종교로 개칭)포교를 발표하고 그 활동을 선언하였다. 조항래,「金敎獻의 生涯와 思想」,《경기사학》8, 경기사학회, 2004, 394쪽.
대종교의 교리는 단군을 비롯한 三神(환인․환웅․단군)의 가르침을 따르자는 것으로 오랜 민간신앙이던 神敎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대종교의 역사서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인류문화의 발상지를 백두산 부근에 설정하여 우리나라를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보고 있다. 둘째, 부여를 포함하여 여진, 몽고, 거란 등 소위 東夷族 전체를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간주하고 이를 우리의 조상으로 여긴다. 셋째, 이에 따라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를 만주와 한반도는 물론이고 중국 동북지방까지 포괄하고 있다. 대종교는 1910년의 경술국치를 계기로 교세가 더욱 확장되어 만주 등지에 망명했던 항일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이 이 교단에 참여할 정도였으며 이상룡, 박은식, 신채호, 안확, 최남선, 유인식, 안재홍, 정인보, 문일평 등이 직간접적으로 대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활동했다.
참고 자료
김정신,「金敎獻 史學의 精神的 背景」,《국학연구》4, 국학연구소, 1998.
조항래,「金敎獻의 生涯와 思想」,《경기사학》8, 경기사학회, 2004.
박영석,「大倧敎의 獨立運動에 관한 硏究-金敎獻 敎主 時期를 中心으로」,《사총》21․22, 고대사학회, 1977.
박영석,「大倧敎의 民族意識과 抗日民族獨立運動(上)」,《한국학보》9, 일지사, 1983.
박영석,「大倧敎의 民族意識과 抗日民族獨立運動(下)」,《한국학보》9, 일지사, 1983.
천경화,「大倧敎의 民族敎育運動에 관한 硏究-中國 東北北方 (滿洲)을 中心으로 」,《백산학보》27, 백산학회, 1983.
한영우,「1910年代의 民族主義的 歷史敍述- 相龍ㆍ朴殷植ㆍ金敎獻ㆍ《檀奇古史》를 중심으로」,《한국문화》1,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구소, 1980.
한영우,『한국민족주의역사학』, 일조각,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