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 후기 사대부의 묘지 건립 의미 탐구 - 분수원 산송(山訟)을 중심으로 -"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요약 : 본 보고서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정치적 혼란기의 영향과 관련하여 산송을 주제로 다룰 것이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 사이 일어났던 산송 중에서 현대까지이어진 ‘분수원 산송’을 중심으로 사대부의 묘비 건립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살펴보고자한다. 당시, 묘비 건립은 사대부 자신들의 명예가 걸려있는 문제였다.
한국사 수업에서 자유 주제로 레포트를 작성하였습니다. 당시 조선 후기 사대부들과 능묘 제도에 관심이 있어 흥미롭게 분석하였습니다.
목차
1. 서론
2. 분수원 산송의 전개 과정
3. 분수원 산송의 묘지 건립 특징
1) 묘지 건립의 확산과 변화된 인식
2) 묘지 건립의 폐단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왕권 혹은 가문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왕과 사대부들은 다양한 노력을 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요히 여겼던 유교적 조선 사회에서 묘지를 건립하는 일은 큰 의미이다.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적 기반으로 고려와 달리 다른 방법으로 통치체제를 만들었고, 종법 의식이 확립되면서 조상의 분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어 갔다. 그리고 묘지를 세우는 행위는 조선이 건국 초기에 왕들의 왕권을 다지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서 사대부들도 점차 묘를 건립하고 조상을 모셨다.
조선의 능묘제도는 중국의 역대 왕조 능묘제도와 고려 시대 제도를 참조하면서 조선의 사정에 걸맞게 변형되었다. 직접적인 영향을 준 나라인 명 건국 이후, 주변국들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조선 또한, 명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한과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묘지 제도를 세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왕릉을 제외한 신분에 따라 묘지의 면적, 규모, 사용되는 재료의 종류 등을 제한하면서 묘지의 무한적 확장을 제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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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산송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런 장기적인 산송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가 파주 ‘분수원 산송’이다.
영조 시기, 풍수지리 사상에 기반을 두어 청송 심씨 가문과 파평 윤씨 가문 간 250년 동안 논쟁해온 ‘분수원 산송’은 가장 긴 산송으로 알려졌다. 영조가 두 문중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 직접 중재에 나서도 소송이 끝나지 않고 현대까지 긴 기간 동안 끝맺음을 쉽게 하지 못했는지 자세히 탐구할 것이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묘지 터를 지키려 했는지 표면적으로는 조상의 수호를 위한 위선 의식으로 알려졌지만, 목숨을 걸면서까지 조선 후기 사대부들 사이 명예가 달린 내면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선 후기 청송 심씨, 파평 윤씨 사이 오랫동안 지속한 파주에서 일어난 분수원 산송을 중심으로 전개 과정을 탐구하면서 당시 지식인들의 묘지에 대한 인식과 끊임없이 지속한 산송의 내포된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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