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전쟁준비 및 초전 조치, 사회적 상황
- 최초 등록일
- 2021.03.20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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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 과제로 제출된 레포트입니다.
발표를 위해 작성된 자료로 설명이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자료를 조금만 찾아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합니다.
목차
1. 한국군 지휘부의 전쟁준비 및 초전조치
1) 한반도 분단과 군정 실시
2) 북한의 상황
3) 남한의 상황
4) 한국의 전쟁 대비
2. 초전에 왜 한국군은 패했는가?
1) 국내외 정세
2) 초기전투
3) 남북의 군사력 비교
본문내용
1. 한반도 분단과 군정 실시
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이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거절하자 미국은 일본 영토에 원자폭탄을 두 개 떨어뜨렸고, 소련군은 한반도 북부 지역까지 진격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8월 15일에 일본 제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38선을 기점으로 하여 일본군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진주한 소련군과 미국군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북쪽에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군정, 남쪽에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군정이 시작되었다.
나. 이와 같이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여 이념대결을 벌임으로써 한국 전쟁이 발발한 시각, 즉, 한국 전쟁을 대리전쟁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설명도 있다.
2. 북한의 상황
가. 전쟁을 위한 정치적 준비
1) 북한 내에서 한국전쟁은 김일성과 박헌영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김책, 무정도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리승엽 등 남로당 계열의 인사들도 찬성하였고, 군사지도자들인 강건, 김웅, 김광협, 방호산, 이권무, 김창덕, 유경수 등은 남쪽과의 일전을 고대하였고 승리를 확신하였다.
2) 이에 비해 최용건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고, 김두봉, 홍명희. 장시우 등은 반대 또는 소극적 찬성을 하였다. 김일성은 수 차례 소련의 지배자인 스탈린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자인 마오쩌둥을 만나 무려 48회나 남침 허락 내지는 전쟁 지원을 요청하였다.
3) 공개된 구 소련의 문서에 의하면 애초에 스탈린은 조선인민군이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1.1.1. 인민군의 실력이 미국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아직은 단독으로 전쟁을 치를만한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적 마찰을 두려워하여 무력행사를 기피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