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개발 흐름
- 최초 등록일
- 2021.02.19
- 최종 저작일
-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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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북한 핵개발의 배경
2. 김일성 시대의 북핵문제(1950~1993)
3. 북미 제네바 합의와 북핵위기(1994~2003)
4.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 1차 핵실험(2003~2007)
5. 북한의 2차 핵실험 및 김정일의 사망(2008~2012)
6. 3차 핵실험과 그 이후의 핵실험 그리고 그 이후
본문내용
1. 북한 핵개발의 배경
북한 김정은은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이 부족했다. 이러한 관계로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무기는 바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공포정치였다. 김정은은 이것으로 북한 내에서 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체제는 물론 자신의 생존 또한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김정은이 그토록 핵과 ICBM에 집착하고 장성택 숙청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를 휘두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 핵개발은 김일성의 오랜 야욕이었다. 북한은 핵개발을 1950~60년대부터 시작했으며 냉전 시기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재제하면서 어느 정도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시킬 수 있었으나 1960년대 이후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가 대량으로 배치되었으며 가장 결정적인 것은 냉전의 결과 공산주의의 대표적 국가인 러시아가 붕괴하자 북한 김일성은 체제유지 및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핵무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핵무기는 북한에게 있어 유일한 생존전략이었기 때문에 어떤 외부의 설득과 협박,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북한은 김씨 왕조의 체제 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는데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을 선동하고 핵보유국임을 인정받는 것이야 말로 정권유지에 엄청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군사적인 관점에서 봐도 육군, 해군, 공군 통틀어 대칭전력에서는 한국에 상대가 되질 않는다는 사실을 북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한 GDP격차는 60배 이상 차이나며 인구 격차는 2배 이상으로 상대가 되질 않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핵무기 및 생화학 무기 등 비대칭전력을 강화하는 것뿐이다. 북한의 핵보유 성공은 바로 그들이 외부의 압력에 대항할 방어막이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자국 내 여론이 무섭다고 하더라도 핵 공격의 위험을 감수하고서 북한에 개입할 수는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