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임시정부 탄생 100년의 의의
- 최초 등록일
- 2020.12.09
- 최종 저작일
- 2019.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2019년 임시정부 탄생 100년의 의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배경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기 활동
3. 임시정부의 위기
4. 한인애국단과 임정의 노력
5.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
6. 임시정부의 대한 생각
본문내용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배경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돌자 3월 1일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계기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조선이 독립국가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5월까지 격렬히 진행되었다. 3.1운동 직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애국지사들은 중국 상해에 집결 하여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를 수립을 하였다. 임시정부는 여러 가지 악조건으로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으나 전 민족적인 3.1운동의 결과로 비롯되고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체라는 점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갖는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기 활동
초기 임시 정부는 내무총장 안창호의 주도로 연통제와 을 조직하는 한편 독립신문을 발행하였으며, 각종 외교 선전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애국공채 발행과 국민의연금을 통해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였다.
1919년 7월 임시 정부는 국제연맹 등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기로 하고, 7월 7일 정부령 으로 국무원 내에 '임시사료편찬회'를 설치하였다. 임시사료편찬회는 총재 안창호, 주임 이광수, 간사 김홍서와 위원 8명 및 조역 22명 등 총 33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9월 23일 4편 4책으로 된 사료집을 완성하여 출판하였다. 총 100질을 출판하였는데, 이 중 1질이 미국 콜롬비아대학 극동도서관에 완질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초기 임시 정부 내부에는 이념적 갈등이 존재했다. 이승만과 안창호가 독립운동의 방략 상으로 대립하였으며, 이념적으로도 국무총리인 이동휘는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고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여 서로 충돌하였다. 임시 정부 내의 사회주의자들끼리도 서로 뭉치지 못하고, 안병찬,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이르쿠츠크파와 이동휘를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파, 그리고 김준연을 중심으로 하는 엠엘파로 나뉘어 갈등을 빚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