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제지술과 인쇄술의 전파와 유럽문명의 전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종이와 인쇄술의 개발과 전파
1. 종이의 개발
2. 종이의 전파
3. 인쇄술의 개발
4. 인쇄술의 전파
Ⅲ. 제지술과 인쇄술이 끼친 서양에서의 변화
1. 르네상스 ․ 종교개혁
1) 르네상스
2) 종교개혁
2. 지식의 확산
1) 과학의 발달
2) 음악의 발달
3) 계몽주의
Ⅳ. 국민국가 형성
Ⅴ.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인류의 지식을 저장하고 전파하며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제지술과 인쇄술의 발달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지술과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다소 폐쇄적이고 와전되기 쉬운 지식의 전파가 국가 단위로 넓어지게 되면서 지식의 심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최초로 불을 전해 준 것과 같은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제지술과 인쇄술이 동양에서 개발되고 전래되면서 서양에서 나타난 다방면에서의 커다란 변화와 이것에서 파생된 사건들을 이 보고서에서 다룰 것이다.
Ⅱ. 종이와 인쇄술의 개발과 전파
1. 종이의 개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종이 이전에도 고대문명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기록에 사용하였다. 잘 알 려진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 개발한 ‘파피루스’와 ‘양피지’이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근처에서 재배되는 파피루스 수초의 줄기를 엮어 압착하여 말린 후 사용하는 종이로, 오늘날 종이의 영문명인 Paper의 어원이 되는 기록을 위한 재료의 초기형태 중 하나이다. 다만, 파피루스는 글자를 쓰기 어렵고 잘 부서진다는 단점과 함께 이집트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국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 로마시기에 이르러 파피루스가 많이 이용되었다. 이와 함께 서양에서 주로 사용된 ‘양피지’는 가축의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기록물로 파피루스에 비해 글쓰기가 쉽고 튼튼하지만,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외에도 동양에서는 목간과 비단을 이용하기도 하였지만, 서양의 파피루스와 양피지처럼 글쓰기가 어렵거나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제지술은 후한 원흥 원년(105년)에 채륜이 개발한 ‘초지법’이다. 이는 넝마, 나무껍질, 나무섬유 등을 솥에 물을 담아 끓여 풀어낸 후 틀에 압착하여 말리는 방법이다. 고대의 종이에 비해 채륜이 만든 ‘채후지’는 휴대가 간편하고, 충분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채후지 이후에도 지속적인 개량을 통하여 현대와 같은 형태의 종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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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deam&logId=3474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