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철학사 연구 - 명왕조의 붕괴와 청대의 실학사상을 중심으로 -
- 최초 등록일
- 2020.07.08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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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양명학과 주자학의 비판
Ⅲ. 역사적 실증사관과 경전의 중시
1. 왕부지의 기철학과 성리학의 비판
2. 경전의 재해석의 논의
3. 경세치용과 실사구시
Ⅳ. 고증학考證學과 공양학公羊學
1. 고증학考證學
2. 공양학公羊學
Ⅴ. 결 론
본문내용
왕부지와는 달리 황종희黃宗羲,와 고염무顧炎武는 서로 학문적인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고염무는 청대 고증학의 시조로 평가되고 있다. 황종희와 고염무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경전을 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통해 공리공담을 배격했다는 점은 왕부지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황종희의 사상은 민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사상이었다. 황종희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서 임금에 대해 “천하가 주인이고, 임금은 객”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려면 학교(太學)의 공정한 의견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종희는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했다. 법에도 ‘천하를 위한 법’과 임금의 ‘일가를 위한 법’을 구분했다. 황종희에 의하면 천하가 주인이므로 당연히 천하를 위한 법만이 진정한 법이라 할 수 있다. 황종희의 민본사상은 그의 학문적 관점으로 뒷받침된다. 황종희는 유학이 ‘천지를 경영하기 위한’ 실질적 학문이라 했지만 현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자기수양과 형이상학적 논의만 강조하는 송대 도학자들의 태도와 경전을 경시하는 양명학자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했다. 황종희는 유교경전이 ‘모두 도를 게시한 서적’이고 ‘모두 실질 정치와 일상생활의 실행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경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전의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경전이 실행된 당시의 문물제도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나 문자의 훈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염무는 경전과 객관적·역사적 사실을 더욱 중요시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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