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권 이러닝 사진사와 미학 기말 과제 A+
- 최초 등록일
- 2020.06.22
- 최종 저작일
- 2019.06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경남권 이러닝 사진사와 미학 기말 과제 A+"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사진 역사의 원점
2. 한국의 사진
3. 도입과 정착기
4. 사진의 정착과 발달
5. 초상 사진과 사진관
6. 8.15 해방과 사단의 재편성
7. 사진 표현의 새로운 모색
8. 1960∼80년대의 사진
9. 사진의 사회적 기능 인식
10. 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사진의 영역
본문내용
사진이란 명칭은 정식적인 사진의 도입 이전부터 사용되었다. 사진을 발명해낸 유럽에서는 이를 ‘빛으로 그린다’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실물과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사(寫)적인 측면과 내면의 정신도 나타내야 한다는 진(眞)의 측면을 강조한 동양 회화 정신의 전신(傳神) 철학이 담겨 있는 사진(寫眞)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사진은 이러한 명칭과 함께 개화 문물로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카메라와 함께 사진술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39년 사진의 발명보다 40여 년이 뒤처진 1880년이다. 이후 다게르의 『다게레오 타입의 역사와 설명』이라는 해설서는 불과 5개월 동안에 29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으나, 이러한 전파 과정에서 아시아 지역은 유럽이나 미주 쪽과는 달리 전래의 동시대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문화 영향권에서 단절된 지역적인 특성과, 국가마다의 서구 문물에 대한 수용적 제약이 중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서구 문물에 대하여 비교적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 상선과 아편 전쟁을 통해 1840년대에 사진술을 수용해 초상 사진 시대가 일찍 개화되었다.
우리나라의 사진 역사는 1880년대로부터 시작된다. 1860년경에 동지사은사로 중국에 갔던 이의익(李宜翼)과 수행원들이 베이징의 러시아인 사진관을 찾아 초상 사진을 촬영하게 된다. 이 사람들은 사진을 처음 찍어봄과 동시에 사진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이다. 이후에도 중국을 방문한 사신들 중에는 사진을 찍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고 또 사진을 간직하고 들어와 주위의 친지들에게 이것을 소개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미국과 일본의 사진사들이 강화도에 상륙해 신미양요의 전투 장면, 강화도 조약 당시의 현장을 촬영한 적도 있었다.
사진 도입에 관련된 자료는 극히 미미해서 논의가 있을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기록은 한성순보 1884년 2월 14일자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