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 - 세종대왕 일대기
- 최초 등록일
- 2020.05.27
- 최종 저작일
-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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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와 문화 - 세종대왕 일대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생애 초기
Ⅰ- Ⅰ. 출생
Ⅰ - Ⅱ. 대군 진봉, 형들과의 전쟁
Ⅰ - Ⅲ. 세자 책봉, 즉위
Ⅱ. 재위 기간 업적
Ⅱ - Ⅰ. 유교 정치의 기틀 마련
Ⅱ - Ⅱ. 대외 정책
Ⅱ - Ⅲ. 국방 정비
Ⅱ - Ⅳ. 훈민정음 창제
Ⅱ - Ⅴ. 재상 등용, 국정 분담
Ⅱ - Ⅵ. 의정부 서사제 실시
Ⅱ - Ⅶ. 처녀 조공과 금은 조공 일시 중지
Ⅱ - Ⅷ. 과학의 발전
Ⅱ - Ⅸ. 문물의 발전
Ⅱ - Ⅹ. 서민 복지 정책
Ⅲ. 생애 후반
Ⅲ - Ⅰ. 가정의 불행
Ⅲ - Ⅱ. 서거
Ⅳ. 사후
Ⅴ. 평가 및 의견
참고 문헌
본문내용
이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ㆍㆍㆍ
쪼개면 초성 – 중성 – 종성이 되지만ㆍㆍㆍ
ㆍㆍㆍ글자가 비록 간결하지만 끝없이 바꾸어 쓸 수 있고 이를 <훈민정음>이라 일컫는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세종실록에 102권에 쓰여져 있는 구절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난 후의 내용이다. ‘한글’ 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우리나라사람들에게 존재한다. 한글은 대한민국 어느 곳을 가도 볼 수 있으며 국민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문자이다. 또 국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므로 세종대왕은 ‘한글’이라는 정신적이면서 직접적인 유산을 남긴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정신적 유산을 남긴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의 생애부터 사후를 살펴보겠다.
Ⅰ – 생애 초기
Ⅰ - Ⅰ 출생
이도는 1937년 음력 4월 10일(양력 5월 15일) 원경왕후 민씨의 육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 양녕대군 이제, 효령대군 이보 및 세명의 요절한 친형이 있었고,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등 동복 친누나 세 명이 있었다. 뒤에 친여동생 정선공주와 남동생 성녕대군 종이 태어난다. 처음 그의 이름은 ‘막동’으로 지었다가 뒤에 이름을 ‘도’로 고쳤다.
Ⅰ - Ⅱ 대군 진봉, 형들과의 전쟁
1412년 16살에 둘째 형 효령군과 함께 대군으로 진봉되어 충녕대군이 되었다. 그는 형제간에 우애가 깊은 인물이고, 부모에게 지극한 효자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동생이며 부왕 태종의 넷째 아들인 병약한 성녕대군에게는 자신이 병간호를 할만큼 그 우애가 유난히 각별했으나 홍역을 앓던 성녕군은 끝끝내 병을 털어내지 못한 채 1418년 음력 2월 4일 14세로 일찍 죽고 만다. 실록에는 그의 도발적 행동도 기록되어 있다. 충녕대군은 “임금의 아들이라면 누군들 임금이 되지 못하겠습니까”라는 한 신하의 위험한 발언을 아버지 태종에게 전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세자인 이제에게 “마음을 바로잡은 뒤에 몸을 꾸미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 일로 이제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참고 자료
<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 정도상ㆍ최재혁>
<이도 세종대왕 조선의 크리에이터, 이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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