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실학과 물류산업 -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를 중심으로 -
- 최초 등록일
- 2020.03.25
- 최종 저작일
- 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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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실학과 물류산업 -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를 중심으로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다산 정약용의 생애
2. 실학의 등장
1) 조선의 중농주의
2) 조선의 중상주의
3. 다산의 중농과 중상
4. 물류에 관점에서 본 경세유표
5. 정약용과 물류
6. 결론
본문내용
Ⅰ. 다산 정약용의 생애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타계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정조 연간에 문신으로 벼슬 생활을 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벼슬생활 중에는 정조의 특별한 총애 속에서 여러 벼슬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1789년에는 한강에 배다리를 준공하고,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사후에는 정치에서 밀려나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정약용은 학문을 더욱 연마해 <일표이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정약용은 실학의 종장으로 일컬어지는 성호 이익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약용에 있어서 강진 유배 기간은 관료로서는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매우 알찬 수확기였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문도를 거느리고 강학과 연구, 저술에만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Ⅱ. 실학의 등장
농업과 상업의 발달, 그리고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조선 후기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점차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커지고 탐관오리의 횡포가 증가하는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등장했다. 그러나 관료들은 붕당을 만들어 대립하고, 학자들은 실생활과 동떨어진 성리학을 연구하며 이론만 가지고 논쟁을 벌였다.
참고 자료
이영재, 이윤영기자, <실학자와 조선 후기 초기>, CLO, 2015 < http://clomag.co.kr/article/1252>
김섭, 2강 중상주의 vs 중농주의, 올리브부동산, 2016 < http://samsanapt.co.kr/220662373843>
김성준, 다산 정약용의 유통물류 상업관 연구, 28권 제4호, 2012
박정호,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한국최초의 경제학자 정약용, 한국경제, 2012
정필수, 역사속의 물류, 물류인-다산 정약용, 해양한국, 2016. < http://hsstar.co.kr/220959311318>
사진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