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통속연의 100회 촉한 영토를 잃고 한나라 종사가 후사가 끊어지며 위나라를 찬탈하고 진나라황실을 세워 터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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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통속연의 100회 촉한 영토를 잃고 한나라 종사가 후사가 끊어지며 위나라를 찬탈하고 진나라황실을 세워 터를 열다 한문 및 한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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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第一百回 失蜀土漢宗絕祀 篡魏祚晉室開基
제일백회 실촉토한종절사 찬위조진실개기
开基 [kāijī] 기초를 닦다. 토대를 마련하다.
후한통속연의 100회 촉한 영토를 잃고 한나라 종사가 후사가 끊어지며 위나라를 찬탈하고 진나라황실을 세워 터를 열다.
却說司馬昭旣誅成濟, 遂議另立嗣君, 決迎燕王宇子璜爲魏主;
각설사마소기주성제 수의령립사군 결영연왕우자황위위주
璜(서옥 황; ⽟-총16획; huáng)
각설하고 사마소는 이미 성제를 죽이고 곧 따로 대이을 주군을 세우길 논의해 연왕 조우의 자식인 조황을 위나라 군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使長子中壘將軍司馬炎, 行中護軍事, 持節至永次縣, 常道鄉, 迎璜入都。
사장자중첩장군사마염 행중호군사 지절지영차현 상도향 영황입도
장자인 중첩장군인 사마염을 시켜 중호군사 일을 시켜 부절을 지니고 영차현 상도향에 이르러서 조황을 맞이하여 도읍에 들어오게 했다.
璜爲常道鄉公, 年方十五, 旣入洛陽, 卽至永寧宮, 謁過太后, 登殿嗣位, 更名爲奐, 改號景元, 進司馬昭爲相國, 封晉公, 加九錫禮, 昭仍然固辭。(何必做作?)
황위상도향공 년방십오 기입낙양 즉지영녕궁 알과태후 등전사위 경명위환 개호경원 진사마소위상국 봉진공 가구석례 소잉연고사 하필주작
奐(빛날 환; ⼤-총9획; huàn)
景元: 260년 ~ 264년
조황은 상도향공이 되어 나이가 바로 십오세로 이미 낙양에 들어가 영녕궁에 이르러서 태후를 배알하고 대전에 올라 황위를 이어받아 성명을 조환으로 바꾸고 경원으로 개원하며 사마소를상국으로 승진해 진공에 봉하고 9석례ㄹ르 더하나 사마소는 여전히 고사했다. (하필 조작하는가?)
是年故漢獻帝夫人曹節病歿, 追諡爲獻穆皇后, 喪葬禮儀, 皆依漢朝故例。
시년고한헌제부인조절병몰 추시위헌목황후 상장예의 개의한조고례
이 해에 예전 한나라 헌제의 부인이던 조절이 병사하여 시호를 헌목황후라고 하며 장례 예의는 모두 한나라 조정의 고례에 의거했다.
참고 자료
중국역조통속연의 후한통속연의, 채동번 저, 중국 삼진출판사, 페이지 586-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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