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기둥을 이루는 장원제
- 최초 등록일
- 2019.12.06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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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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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원은 간단히 말하면 보통 봉신 한 사람이 소유한 토지로서 농경 및 토지 관리의 단위였다. 장원은 대개 하나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한 영주의 지배 아래 어떤 한 장소에 위치한 농경지를 장원이라 부르는 것이다. 장원은 약 300여개의 농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한 장소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산재되었다. 9세기말 장원은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널리 제도화되었다. 일반적으로 장원제도는 남 잉글랜드에서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서부 독일에서 북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농업 생산이 가장 왕성한 지역에 정착되었다. 장원은 영주와 농민층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생산하는 경제적 하부구조였다. 그러나 동시에 영주의 농민에 대한 지배와 영주와 농민 상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정치․사회적 단위였다.
장원의 형태와 구조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달랐다. 장원은 그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자급자족의 필요에 따라 상이하였다. 장원의 구조를 살펴보면 가장 높은 곳에는 성벽을 쌍은 장원 청이 있어서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영주와 농민의 피난처가 되었다.
참고 자료
심재윤, 『서양중세사의 이해』, 선인, 2005.
네이버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547653&docid=133149&dir_id=03030802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