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뿌리깊은 이야기 - 역사적 인물 재평가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9.12.02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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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적으로 재평가 되어야 할 인물 중 황옥 경부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황옥 경부는 한일투사로 기록되고 있긴 하지만 학계에서는 황옥경부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본경찰의 밀정이라고 평가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건당시 거사 직전 발각되었고 주동자가 황옥 경부였다는 이유로 그의 업적이 고등일본경찰 활동이었다는 평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황옥 경부에 대해 재평가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기술하려 한다.
일명 황만동(黃晩東)으로, 1885년(고종 22)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06년 형마저 일찍 사망하게 되자 집안을 이끌어 가게 되었다. 가문의 소종가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문중의 큰일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국망의 위기에 헤쳐 나갈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벌과 자산을 가진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황옥은 어린 시절 남달리 뛰어난 두뇌로 총명하였다. 그는 집안의 가세에 힘입어 송병진(황옥과 내외종, 송남헌의 부)과 함께 가학과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집안 어른들의 개화의식과 신교육을 받아 도천학교 재건설립운동에 앞장서게 된다. 1909년 도천학교가 폐교되자 황옥은 송병진과 함께 통감부의 재판소 서기 겸 통역생으로 취직한다.
1908년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장악한 일제 통감부는, 일본인을 주요 상급직에 대거 임용한 가운데 판임관 이하 하급관리직에는 조선인들을 임용하여 배치하였다. 황옥을 비롯한 신교육을 받은 많은 신지식 청년들이 일제 통치하에 하급관리로 근무하게 된다. 당시 황옥을 비롯한 많은 조선인 관리들의 현실인식은, 이와 같이 일제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체계에 순응한 조선인 관리들은, 일제 지배기구인 총독부 관리로 편입되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일제의 극심한 민족차별 정책 밑에서도 새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이, 그때의 식민지 아래에서는 있을 리가 없고 살기 위해서는 미관말직으로 복무치 않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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