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협찬설
- 최초 등록일
- 2019.11.24
- 최종 저작일
-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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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학기의 ‘국어사’과목과 이번학기의 ‘국어학 강독’과목을 수강하면서 지난 일 년 동안 훈민정음에 대해 수없이 배웠다. 과연 훈민정음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나는 분명 세종이 천재적인, 미친 사람이 맞다 보지만 절대 혼자 만들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몇 편의 논문을 가지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인지, 친제인지 혹은 친제협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
한글 창제와 관련된 일자 사료는 세종 25년 계해기사와 세종 28년 병인 실록 기사 이외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료가 실록 기록이기 때문에 이 실록 기록의 문면에 대한 정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실록 소재 예의의 이본간의 변개는 글자가 누락된 것, 글자가 바뀐 것, 글자의 순서가 바뀐 것, 이체자로 쓴 것, 대용자로 쓴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은 상주문인 관계로 매우 정교하지만 실록의 기록은 제안자인 세종의 초고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거리 엄격한 격식을 갖추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따라서 예의에 나타는 글자의 이동의 문제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편방점획 등의 제약이 덜 가해진 기록 문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세종이 제시한 예의의 원본에 더 접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실록본은 1차 사료로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실록본 예의가 해례본으로 발전하면서 일부의 변개가 있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는데 그 근거로는 실록본 예의가 조선 후기에 성운학자들에게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쳤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료의 검토 방식으로 순차적인 접근을 할 때 세종 28년 병인 9월 상한의 기록인 “예의를 간략하게 드러내어 보이시며”를 근거로 하면 세종25년 계해 12월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언문 28자를 ‘훈민정음’이라는 명칭까지 규정하고 글꼴과 음가 및 그 운용법을 제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달에 언문 28자를 창제하였다는 실록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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