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의 혁명전략 이론
- 최초 등록일
- 2019.10.15
- 최종 저작일
-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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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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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20년 진독수를 알게 되고 중국 공산당 창립대회에 호남성 대표로 참가해 중앙위원이 된 이래 모택동은 장래 혁명의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혁명이론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그가 독서에 파묻히게 된 원인이었다. 또한 모택동은 독서에서 얻은 이론적 지식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의 첫 시작이 1925년이었는데, 그는 이때부터 이미 호남의 농민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토대로 호남・강서 지역에서 추수폭동(秋收暴動)을 지도하는 등 농민운동을 주도하며 활발하게 혁명운동을 실천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거듭된 농민운동의 실패로 혁명의 기운이 퇴조하자, 정강산(井岡山)으로 들어가 소비에트 근거지를 만들어 공농홍군(工農紅軍)을 조직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고는 이 홍군의 지지 아래 1931년 강서성 서금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설립해 주석에 선출됐지만, 중국 국민당군이 포위작전을 벌이며 소비에트 지역에 대한 토벌을 단행하자 이만오천 리에 이르는 장정을 떠나게 됐다. 그러는 도중 귀주성 준의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당의 주도권을 잡으며 섬서성 연안에 근거지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며 농민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의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총동원해 1937년에 「모순론」과 「실천론」을 집필했고, 이러한 이론의 정립은 러시아식 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른 중국식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들 두 가지 이론은 중국 혁명의 절대적인 이론적 기초가 됐고, 혁명 성공 후에 모택동의 정권 유지 또는 정권 재창출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실천론」은 1937년 모택동이 연안의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 철학과에서 수업할 때 한 강의의 일부로, 원래 강의 제목은 '변증법적 유물론'이었다. 전체 8,500자, 3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은 서론이고, 2장은 「인식론(認識論)」 등이며, 3장은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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