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경제사 과제 : 왕안석 신법 조사하기
- 최초 등록일
- 2019.09.07
- 최종 저작일
- 2018.1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사회경제사 과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
1. 재정 확보책과 관련한 개혁
(1) 균수법
(2) 청묘법
(3) 모역법(면역법)
(4) 시역법
2. 군사력 강화를 위한 개혁
(1) 보갑법과 보마법
(2) 장병법
3. 신법의 재정절감 효과
Ⅱ. 아리랑tv
1. 남한 소비자 물가는 10월에 2% 올라 13개월 만에 최고치
2. Trial and error for governments worldwide in fight against fake news
3. 세계 각국 정부의 거짓 뉴스와 투쟁하는 시도들
본문내용
왕안석의 개혁, 즉 신법 가운데 첫 번째로 시행한 조치가 균수법이다. 균수법은 제치삼사조례사(조례사)가 설치된 직후인 1069년(신종 희녕 2) 7월에 도입되었다. 조례사가 철치된 것이 1069년(희녕 2) 2월이니 그로부터 5개월 후에 시행된 것이다. 사실 조례사 자체 그 최초의 설립 목적은 균수법을 시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송은 북방의 거란 및 서하에 맞서기 위해 막대한 군대를 변경지역에 배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엄청난 군사비 부담이 재정을 압박하고 있었다. 신종은 새로이 발탁한 왕안석에게 이러한 재정 부담의 타개책에 대한 자문을 구하였고, 왕안석은 이에 조례사의 설치를 건의하였던 것이다. 왕안석은 국가의 유통구조를 효율화시킴으로써 재정 낭비를 줄이고자 했다. 당시 송 정부는 필요한 물자를 각 지방으로부터 현물로 징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방에서 공출한 물자와 정부의 필요가 일치하지 않아 막대한 낭비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때로는 정부가 각 지방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현지 상황과 동떨어진 물자를 공출하라 규정하기도 했다. 그런 경우 농민들은 생산하지 않는 물자를 공출하기 위해 상인으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매입해야 했다. 정부의 공출은 주로 멀리 있는 남중국 지방에 집중되었다. 11세기 중엽이 되면 남중국의 경제력이 다른 지방을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먼 남중국으로부터 수도인 개봉으로 물자가 어렵사리 운송되어 왔지만, 그 상당수는 정부에게 아무 쓸 데가 없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결국 정부는 불필요한 물자를 상인들에게 헐값으로 불하하여 대상인의 배만 불렸다. 반면 정작 정부에게 필요한 물자는 반대로 상인들로부터 고가로 매입하여야만 했다. 균수법은 이러한 재정 낭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균수법’이란 명칭은 지방으로부터의 물자 운송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의미였다. 매년 정부에서 필요한 물자를 조사하여 각 지역에 그 수량을 적절히 할당하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