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과 전개 과정 역사 및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9.08.05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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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유럽의 대립
2. 전쟁의 발발
3. 전쟁의 종식
4. 1차 세계대전의 책임 논쟁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연합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 231조에 따라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독일에게 전가하였다. 또한 세계사 교과서에서조차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을 독일의 팽창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1차 세계대전의 책임 문제는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의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베르사유 조약 231조와는 달리 모든 전쟁의 책임이 독일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원인들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대립요소, 그리고 당시의 국제관계에 의해 발생하였으므로 전쟁 당사국들 모두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독일을 위한 변명'을 통해 1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독일에게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유럽의 대립.
(1) 리만 사건(1913년 11~12월)
발칸 전쟁으로 인해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그러던 중 1913년 11월에 터키 정부는 독일 장군 리만을 콘스탄티노플의 터키 제1군 사령관에 임명했다. 크림 전쟁 이후 터키와 대립해오던 러시아에게 있어서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동맹국인 프랑스는 처음부터 러시아를 지지하고 나섰으며 결국 1914년 1월에 리만 장군은 해임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와 독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영국은 독일과 계속해서 대화의 창을 열어놓고 있었다. 비록 해군 교섭 문제는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했지만 바그다드 철도 문제는 1914년 6월 15일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영국이 계속해서 독일과 협상을 시도하자 독일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최소한 영국은 중립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리만 사건 이후 유럽에는 전쟁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으며 윌슨 미국 대통령의 친구이자 측근인 하우스 대령의 보고서에서 이러한 전운의 기운이 잘 나타나있다.
(이곳의)상황은 비정상적입니다. 광적인 군사주의 바로 그것입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