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과 IMF사건을 비교하여 논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19.06.19
- 최종 저작일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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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국채보상운동이란?
2) IMF 사태 란?
3) 국채보상운동과 IMF사태 비교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0여 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시기에 전개된 금모으기운동은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금모으기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 비슷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채보상 운동과 IMF사태 두 운동의 성격이 비슷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1. 국채보상운동이란?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그 당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부터 우리나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차관공여를 제기하여 두 차례에 걸쳐 각 30만 원과 3백만 원의 차관을 성립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차관 공세는 1904년 제1차 한일협약 이후 더욱 노골화되었다. 이때 일본이 우리나라에 차관 공세를 펴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의 재정을 일본 재정에 완전히 예속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차관으로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정지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에 의하여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우리나라에 재정 고문으로 부임한 메카타는 1906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1,150만 원의 차관을 도입하였다. 제1차 차관은 1905년 1월 ‘폐정리자금채’라는 명목으로 해관세를 담보로 한 3백만 원이었다. 제2차 차관은 1905년 6월 우리 정부의 부채 정리와 재정 융통에 필요한 자금 명목으로 한국의 국고금을 담보로 2백만 원을 들여왔다. 제3차 차관은 1905년 12월 우리나라의 토착 자본을 일본 자금에 예속시킬 목적으로 금융자금채 150만원을 들여왔다. 제4차 차관은 1906년 3월 기업자금채의 명목으로 5백만 원을 들여왔다.
참고 자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7555&cid=40942&categoryId=31778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4&dirId=401&docId=271629943&qb=SU1G&enc=utf8§ion=kin&rank=7&search_sort=0&spq=1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081201.0103108161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