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의 유래
- 최초 등록일
- 2019.06.05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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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로교인들의 반란
2.하나님의 백성에게 힘을
3.스코틀랜드에 울린 우레 소리
4.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5.광야 가운데 있는 시온
6.명칭 속에 담긴 뜻
7.하나님으로 하나님 되시게 하라
8.하나님이 말씀하셨느니라
9.하나의 교회
10.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 주시다
11.TULIP 속에 있는 복음
12.약속의 상속자
본문내용
1. “장로교인들의 반란” 영국 하원 의원에서 신세계에 발생한 “비상사태”를 보고를 월폴이 이렇게 하였다. “친구 아메리카는 한 장로교 목사와 함께 도망쳐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 끝입니다.” 월폴은 위더스푼이 이 “장로교 반란”에 개인적으로 관계를 가졌다고 보는 혐의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였다. 위더스푼은 독립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였다. 장로교 목사들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하는 편에 단호히 섰다. 초기 식민지 통치 시대의 어떤 설교를 들어보면, 종교와 정치는 혼동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마 놀랐것이다. 독립전쟁 동안 칼빈주의자들의 강단의 힘은 너무도 컸기 때문에 한 열렬한 뉴 잉글랜드 목사는 “그의 전 교구를 따라 군대에까지 찾아가 설교하고 다녀서 정신이 돌아버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전쟁을 향하여 강렬한 정열을 불태우고 있던 목사는 죤 아담스, 죠지 더필드 등 비참한 전투에서 군목으로 사역하고 난후 전쟁에 거의 관여치 않은 그의 교인들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다시 군목으로 한번 더 워싱턴 군대에 재참전하였다. 독립전쟁으로부터 나올수 있는 애국자 목사중 제임스 콜드웰이다. 그는 뉴저지 스프링필드의 한 전투에 참전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는 독립군 부대원들이 자기들 소총에 탄약을 장전하는 데 필요한 종이 뭉치가 떨어져 근처 한 장로교회로 들어가 찬송가를 들고와서 사용하였다. 또한 게이어스 슬로서는 말하기를 “비슷한 상황들이 식민지 지역 전체에 벌어지고 있었는데, 장로교인들이 애국적 열정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토마스 스미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콘월리스가 완전히 밀려 퇴각하다가 요크타운에서 항복하게 되었을 때 식민지 군대의 연대장은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장로교 장로였다. 독립전쟁시의 미국 육군의 모든 병사와 장교의 절반이상이 장로교인이였다.” 그러나 한편 장로교인들의 전쟁에 참여한데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였다. 그들 교회의 상당수는 불에 탔으며, 다른 교회들은 마굿간이 되거나 병참부가 되거나 부상자를 위한 수용소로 바뀌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