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와 약탈 문화재 : 한·일간 교과서 기록 비교
*소*
다운로드
장바구니
목차
Ⅰ. 여는말Ⅱ. 왜구에 대한 연구사 정리
1. 일본의 연구
2. 한국의 연구
Ⅲ. 일본과 한국의 사료 인용 문제
1. 일본 측 사료와 인용의 문제
2. 한국 측 사료와 인용의 문제
Ⅳ. 역사 교과서의 왜구 관련 서술 비교 분석
1. 일본 교과서의 서술
2. 한국 교과서의 서술
Ⅴ. 왜구와 기억의 터
1. 기억하고 있는 공간
2. 망각된 공간
Ⅵ. 왜구의 약탈 문화재
Ⅶ. 약탈 문화재 논쟁
1. 쓰시마 불상 절도 사건
2. 한·일간 입장의 차이
Ⅷ.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끝이 보이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소모적인 외교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한일 관계의 현안으로 급부상하게 되며, 독도 영유권과 역사교과서, 한일 간 위안부 협상 등에 이어 양국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내각부가 조사한 한국에 대한 친밀도는 2012년 63%까지 상승하였지만, 한국에 대해 '좋다'고 대답한 일본인은 2016년 29.1%, 지난해 26.9%, 올해 22.9%로 호감도가 하락하며 한일 간의 관계의 변화를 보인다. 일본은 현재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왜곡 등의 우경화(右傾化)정책을 통해, 우리와 관련된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일본의 역사왜곡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는 현실에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역사교과서 내용에서 오류 부분의 수정을 요구할 때마다 오히려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위기감마저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일본 역사교과서 내용 중에서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왜구의 주체와 발생 원인에 대한 우리의 수정요구 사항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는 고려 말 왜구의 주체와 발생 원인에 대한 한․일 학자들 간의 학설 대립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왜구의 주체가 고려인․조선인이며, 발생 원인이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총체적인 혼란상황에 있다고 파악하는 일부 일본학자의 견해가 몇 개의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불거진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14세기는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본 해적의 활동과 왜구 활동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활발해 지는 시기이다. 이미 우리는 일본인 왜구의 활동이 고려 흥망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일부 일본학자는 왜구의 주체를 고려인․일본인의 연합이며, 왜구발생의 원인이 고려 내부에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참고 자료
이영, 2007,『잊혀진 전쟁, 왜구』,에피스테메이영, 2011,『왜구와 고려, 일본 관계사』, 혜안
이영, 2013,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고려 말 왜구』,혜안
이영, 2009,「가라쓰(唐津) 카가미 신사(鏡神社) 소재 고려 수월관음도의 유래『한일관계사연구』 제34집
이영, 2010,「동 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동과 왜구」, 『한일관계사 연구』제36권
이영, 2010,「일본 중세 대외관계사 연구의 문제점과 영향」,『동아시아 속의 한일관계사』(下)
이영, 1996, 「고려말기 왜구 구성원에 관한 고찰 - ‘고려, 일본인 여합론’ 또는 ‘고려, 조선인 주체론의 비판적 검토」,『한일관계사 연구』제5권
이영, 2010, 「왜구= 다민족, 복합적 해적설의 허구와 문제점- 식민사관과 관련하여」,『동북아역사논총』제26권
이영, 2007,「14세기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왜구 -공민왕 15년(1366)의 禁倭使節의 파견을 중심으로」,『한일관계사 연구』제26권
이영, 2011, 「14세기 후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고려-원•명-일본 관계」
이영, 2002,「홍산.진포.황산 대첩의 역사지리학적 고찰」,『日本歷史硏究』 제15집
도진순, 2008,『망각의 소환을 통한 남해안의 역사적 재탄생을 위하여』
나종우, 2002,「조선은 왜 쓰시마를 정벌했나」, 『내일을 여는 역사』 제10호
이규철, 2009,「1419년 쓰시마 정벌의 의도와 성과」,『역사와 현실』 제74호
이익주, 1996, 「고려,원관계의 구조와 고려후기 정치체제」 ,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이익주, 2012, 「14세기 후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고려-원•명-일본 관계」,『진단학보』
심민정, 2013,「삼포왜란의 발생원인과 쓰시마」, 『동북아문화연구』 제34집
윤용혁, 2014,「고려 말의 왜구와 서산 부석사」, 『역사와 담론』 제69집
김보한, 2008,「중세의 왜구-학술 성과와 고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 연구』제30권
김기섭, 1997,「14세기 倭寇의 동향과 고려의 대응」, 『,韓國民族文化』 제9집
김보한, 2001,「少貳冬資와 倭寇의 일고찰 : 少貳冬資의 피살과 관련해서」, 『일본역사연구』 제13집
남기학, 2009,「중세 고려․일본 관계의 쟁점」, 『日本歷史硏究』 제17집
김경임, 2013,「서산 부석사 금동관음상 심층탐구와 문화재환수운동의 의미」, 봉안위원회정책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