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이미지회복전략
- 최초 등록일
- 2018.11.17
- 최종 저작일
-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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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IMF 구제 금융시기 (97년 11월 22일~ 98년 1월 29일)
2. 외환위기 특별감사 시기 (1998년 1월 30일~ 1998년 9월 31일)
3. 경제 청문회 시기 (1998년 10월 1일~ 1999년 3월 31일)
4. 결론
본문내용
< IMF 사태와 YS언변 >
IMF사태는 97년 11월 21일 밤 재정경제원에서의 비상회의 긴급 소집을 시작으로 다음날 아침 김영삼 대통령에게 IMF행 보고서를 제출한 후 임창렬 당시 경제 부총리가 정부종합청사에서 전국에 TV생중계를 통해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라고 발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밝혀진 바로는 열흘 전 미리 그 사실을 알고도 실질적 발표는 21일에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각 언론이 사태의 원인 및 심각성에 대한 기사를 급증적으로 다루고 국민들의 혼란 또한 가중되었으나 27일까지 김영삼 대통령은 어떠한 직접적인 발언도 하지 않았고 27일이 되어서야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느낀다. 금융외환시장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IMF자금 활용을 검토하고 있으니 적극 협조해달라.”고 발표함으로써 국가책임자로서 김영상 대통령의 IMF관련발언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IMF 상황을 거치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언변과 관련하여 많은 언론의 보도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그림 중략 >
김영삼 대통령이 구사한 이미지회복 전략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위기의 진행과정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했다.
1. IMF 구제 금융시기 (97년 11월 22일~ 98년 1월 29일)
사건 초기 김영삼 대통령은 이미지 회복 전략의 사과, 수정행위, 부인, 책임회피의 네 가지 전략을 사용하였으며 그 중 ‘사과 전략’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고 수정행위, 그리고 부인전략의 하나인 ‘책임전가’와 책임회피 전략의 하나인 ‘좋은 의도’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국가의 경제 상태가 악화된 데 대해 국정의 최고지도자로서 유감을 느끼지만, 그에 대한 실질적 책임은 최소화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사과의 수준이 관념적 도덕수준에 머물러 있고 구체적인 책임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