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
Ⅲ. 취락의 구성요소
Ⅳ. 취락의 공간구조와 변천
Ⅴ. 중부지역의 취락상
Ⅵ. 중부지역 취락의 구조와 성격
Ⅶ. 취락의 사회구조
Ⅷ. 맺음말
본문내용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시대의 초보농경과는 달리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 시기로 대규모 경작유구의 보고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신석기시대의 취락은 정주성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지만 청동기시대의 취락이 정주성이 강하단 것엔 이견이 없다.
신석기시대의 취락이 주거지로만 구성이 되었던 반면에 청동기시대의 취락은 분묘, 생산시설, 저장시설 등 다양한 요소들이 취락을 구성하며 본격적인 정주취락의 등장 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청동기시대의 편년을 두고 ‘3분기설’, ‘4분기설’, ‘신3분기설’을 두고 연구자마다의 의견이 달랐지만, 본고에서는 한국청동기학회의 기준편년안에 따라 조기-전기-중기-후기에 따라서 청동기시대 취락의 구조와 기능을 살펴보려한다.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
1.청동기 시대 취락의 입지 연구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가 등장한 이후 선사시대 유적의 입지는 크게 구릉과 충적지로 구분됐다. 연구자들은 이를 기본으로 하면서 선사시대 유적의 입지를 세분하였다. 먼저 정징원은 입지를 저지성유형, 구릉성유형, 고지성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정징원의 연구는 이 후 발굴사례가 증가하면서 현재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정징원은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구릉성유형만 확인되고 중기에 저지성유형이 나타난다고 했다. 중기는 수도경작에 필요한 가경지의 획득, 수리시설의 확보를 둘러싼 긴장이 높은 시기로 방어시설인 환호가 등장한다고 하였다. 하천 충적지에 취락이 입지하는 저지 성유형의 출현을 무문토기사회의 대변혁이라고 하였다. 후기에는 고지성유형이 등장하는데 방어를 목적으로 출현하였다고 한다.(이수홍 2014)
최헌섭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 선사취락의 입지를 검토하여 입지유형을 하천형과 구릉형, 해안형으로 3대별하였다. 하천형은 자연제방, 하안단구, 선상지로 세분하였는데 자연제방은 물의 확보에 유리하고 어로와 포획을 통한 경제적 배경과 방수문제가 입지인자로 고려되었다고 한다. 하안단구는 홍수에 대한 안전성과 타지역과의 교통에 유리한 점이 입지인자로 고려되었으며 선상지는 용수의 확보가 중요한 입지인자로 고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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