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明成皇后), 조선의 근대와 좌절
- 최초 등록일
- 2018.10.06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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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19세기 중엽 조선의 대내외적 상황
3. 민 왕후의 대외정책
1) 민씨 정권의 개혁과 청의 내정간섭
2) 민 왕후의 引我政策
3) 청일전쟁과 민 왕후의 시해
4. 민 왕후의 정책에 대한 평가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머리말
1895년 10월 8일, 새벽의 적막을 깨는 괴한들의 칼부림에 조선의 국모가 처참히 살해되었다. 하지만 사건은 그 진실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오늘날 한국인들은 이 사건을 을미사변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건의 피해자인 명성황후, 즉 민 왕후의 생애는 현대에 들어 대중매체와 미디어의 힘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다시금 받고 있으며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 역시 바르게 잡고자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최근 들어 민 왕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녀에 대해서도 단순한 정치적 희생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특히 당시 민 왕후를 직접 만나본 서구인들은 그녀를 지적이고 유능한 외교관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그녀가 그저 현모양처에 조숙한 왕비가 아니었음을 짐작해볼 수가 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 본격화된 서구세력의 등장과 근대화의 바람은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당면 과제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열강과의 외교정책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교정책의 중심에는 바로 ‘외교관’ 민 왕후가 존재했으며, 그녀가 생존해있는 동안 조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근대와 자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본서는 19세기 중반 조선의 근대와 자주를 둘러싼 조선의 정치 상황과 민 왕후의 외교 정책에 대하여 시대 순으로 정리해보았으며, 더불어 오늘날 그녀의 외교술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2. 19세기 중엽 조선의 대내외적 상황
19세기 중엽의 동아시아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존속하여 온 전통적 세계질서가 무너지게 되었다. 즉 西勢東漸의 거센 물결 앞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책봉관계가 무너지고, 동아시아 내 각국은 서구 열강의 압력 앞에서 문호를 개방하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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