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호시대의 국학사상
- 최초 등록일
- 2018.04.25
- 최종 저작일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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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 리 말
Ⅱ. 國學思想 발생의 배경
Ⅲ. 本居宣長의 학문과 國學의 성립
Ⅳ. 近代 天皇制의 등장 배경
Ⅴ. 맺 음 말
본문내용
Ⅰ. 머 리 말
天皇制는 日本의 역사 전개과정 속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일본은 古代時代에 천황제를 만들어 자신들의 군주로 삼았고 이후 현재까지 천황제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개 과정 가운데에 무사들에게 정국운영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면서 천황은 단지 상징적인 군주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허울뿐인 천황의 모습은 일본의 中世와 近世時期로 불리는 기간 동안에 해당되는데 천황은 이 동안 京都에 갇혀 지내다 시피 해야만 했다. 그러나 明治維新을 기점으로 천황의 역할은 이전과는 달라진다. 유신지사들은 尊王攘夷論을 내세우며 천황의 권위를 다시 고대의 절대적인 것으로 돌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러한 천황우월주의가 유신지사들에 의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근세시기를 전후로 하여 일본 사회에 있던 國學思想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국학사상이 어떠한 경위로 형성되었으며 그것의 전개, 이후 일본의 근대시기 천황인식을 만드는데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國學思想 발생의 배경
일본의 근세를 연 德川幕府는 그 사상적 기반이 단일한 사상적 체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諸藩들의 자치권을 인정했던 막부는 중국과 같이 과거제도를 통해 통일된 정치이론을 전국에 전파하지 않았고, 체계적인 정통이론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막부는 朱子學에 관심을 갖고는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다양한 사상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주자학적 질서에만 입각하지 않은 세계관을 뿌리내릴 수도 있었다. 한편 中華體制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세계관은 明朝의 쇠퇴와 滿洲族의 발흥에서 오는 일본의 국가적 위기도 사상적 동향에 크게 영향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만주족에 의한 淸의 건국과 中原 석권은 일본인에게 中國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의식을 강화시킴과 더불어 蒙古의 일본 경략과 관련시켜 군사적 경계심을 갖게 하는 이중의 국가의식을 자각시키게 하였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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